'명예', 그 간사함에 대하여

by Lohengrin

물질적 포상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기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한 사회적 장치로 작동해 왔다. 호모 사피엔스가 본능적으로 품고 있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원을 동기화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이를 제도화한 것이 바로 ‘포상’과 ‘명예’다.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한 원시시대부터 ‘잘한 사람에게 보상한다’는 개념은 구성원의 행위를 통제하고 이상적인 행동양식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즉, 포상은 단순한 보답이 아니라, ‘이렇게 행동하라’는 지침이자 사회 규범의 형성 수단이었다. 나폴레옹은 이 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군의 사기를 높이고 충성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을 제정했다. 이는 단순한 메달이 아닌, ‘국가가 당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신호였고, 개인에게는 ‘존재의 증명’이었다. 훗날 이 훈장은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심지어 외국인에게도 수여되며 명예훈장의 범위를 넓혀갔고, 이는 현대 서훈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이 포상 제도는 절대 권력자들의 손에 들어가면서 점차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특히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명예’라는 이름 아래 대중의 시선을 특정한 가치관과 체제에 묶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과거 소련, 중국, 북한 등의 사례를 보면, 국가적 행사에 등장한 퇴역 군인들이 가슴 가득 훈장을 달고 나오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이러한 과잉은 ‘공적에 대한 합리적 평가’보다는 ‘충성 경쟁’과 ‘권력에 대한 복종’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명예는 본래 개인의 자율성과 성취를 반영하는 상징이지만, 체제가 그것을 장악하면 곧 사회 통제 수단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래서 상(賞)은 그 수여 방식과 기준이 엄격하고 공정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집단은 포상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고, 오히려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포상을 통한 명예의 존중은 거창한 서훈이나 훈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포상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부모가 자녀의 선행을 칭찬하고 작은 보상을 주는 일, 회사에서 성과가 좋은 직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는 일,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는 일 등 모두 포상의 일환이다. 이 모든 행위는 공동체 내에서 긍정적인 행동을 유도하고, ‘잘했다’는 인정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흥미로운 것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포상의 종류도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팀에게는 트로피가, 올림픽에서는 메달이 주어진다. 영화나 음악 분야에서는 각종 시상식이 열리며 수많은 상이 주어진다. 이처럼 포상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성과의 공식화된 마침표’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상의 무게감은 해당 분야의 명예와 직결된다.

그렇다면 명예란 무엇인가? 명예(名譽; honor)는 말 그대로 ‘이름’과 ‘평판’의 결합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이름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명예는 외부의 시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대 사회에서 명예는 단지 도덕적 차원에서의 긍정 평가를 넘어, 법적 권리로도 다뤄진다. ‘명예훼손’이라는 범죄가 존재하는 이유도 명예가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명예는 단순히 외부로부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행이 일관되고 진정성 있게 쌓여야 비로소 성립된다. 진짜 명예는 훈장이나 상장이라는 외형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없이 증명해 주는 무형의 자산이며, 매슬로우가 언급한 인간 욕구의 단계에서 ‘존중 욕구(Esteem Needs)’에 해당하는 본능적 갈망이다. 우리는 인정받고 싶고, 이름이 빛나기를 원하며, 그것을 통해 ‘내가 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명예와 포상의 제도가 제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논공행상은 개인의 공로나 업적에 대한 엄중한 평가 위에 세워져야 한다. 상을 나눠먹는 짬짜미, 실적 조작, 성과 가로채기 등의 행위는 집단의 신뢰를 붕괴시키고 상 자체의 가치를 무너뜨린다. 그런 환경에서는 어떤 보상도 구성원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냉소와 무기력을 불러올 뿐이다.


그래서 일부 조직이나 행사는 이런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경쟁보다는 참여의 가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상을 운영한다. 목표에 도달한 모든 사람에게 메달을 수여하거나, 기여도가 일정 기준을 넘는 사람들에게는 동등한 상을 주는 제도다. 이는 단순한 포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보다 잘했다’가 아니라 ‘우리는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이 중심이 되며, 집단의 소속감을 강화하는 방식이 된다.


명예는 외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위로 구축되는 것이다. 실적이나 훈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가’이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표면적인 성과 뒤에 위선과 조작이 있다면, 명예는 금세 실추된다. 명예는 거울과 같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비추는 투명한 거울. 그 거울이 깨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몫이다.


명예는 결코 타인이 주는 장식의 훈장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증명해 주는 또 하나의 이름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회 안에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품고 있어야 할 ‘보이지 않는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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