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하나 정도는 다루시나요?

by Lohengrin

피아노가 됐든 바이올린, 기타가 됐든 드럼이나 클라리넷이 됐든,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나요? 70-80년대만 해도 집에 피아노 1대 정도는 있어야 부의 상징 역할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물론 주인장이 피아노를 치는 것을 취미로 하거나 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자녀들을 있어 보이게 하기 위한 부모들의 허세 수단으로 피아노를 집에 들여놓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장식용일 가능성이 더 컸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아시겠지만 주거형태가 대부분 아파트로 바뀌면서 집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는 소음으로 여겨져 경비실 민원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요즘은 있는 피아노도 처분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제 주변에도 아직도 집에 피아노가 있는 지인들은 단독주택 사는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 정도 다닐 때는 아이들 정서 함양을 위해 피아노 학원 보내고 학원 선생님이 "어머! 얘가 절대음감을 가졌나 봐요. 손가락으로 악보의 감정을 전달할 줄 알아요"정도의 입에 발린 소리라도 들을라치면 당장 집에 피아노 1대 들여놓았다.


많은 가정에서 그랬겠지만 집에서 아이들 피아노 치는 소리가 바이엘을 넘어 체르니 100 정도 넘어가는 수준을 연습하는 딱 2-3년 정도였을 겁니다. 그리고는 명절날 일가친척들이 모였을 때 자랑스럽게 아이들을 피아노 앞에 앉혀 '우리 애가 이렇게 잘해요'를 시켜봤을 겁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피아노의 소리는 딱 거기서 멈춰있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음대를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바로 입시 지옥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손에는 영어와 수학책이 대신 들려있습니다.


자녀들은 그렇다 치고 어떠신가요? 다루실 줄 아는 악기는 있으신가요?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불던 리코더 정도는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숟가락으로 술상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는 감각 정도는 갖추고 있으시다고요?

사실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악기를 다룬다거나 할 때는 음높이를 알아채는 청각적 예민함이 있어야 하는 게 사실일 겁니다. 저는 집에 어쿠스틱 기타로 타카미네와 야마하 2대가 있습니다. 비싼 건 아니고요. 그냥 보급형 수준입니다. 기타가 2대가 된 것은 10년 전에 산 타카미네의 음색이 조금 차가운 감이 있는데 지난해 우연히 지인이 기타를 배우려고 사놓은 야마하가 있는데 한 번도 쳐 본 적이 없어서 '당근'에 팔려고 내놓는다고 해서 가져와보라 해서 쳐봤는데 따뜻한 소리가 났습니다. 악기의 음색을 듣는 것도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넙죽 제가 야마하 기타를 받았습니다. 요즘은 가끔 기타를 꺼내 쳐볼 때 야마하 기타에 손이 먼저 가고 있습니다.


기타와의 인연은 제법 오래되긴 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찮게 옆집이 이사를 가면서 낡은 기타를 주고 갔는데 기타 줄만 걸려있지 조율이 안돼 화음을 맞출 수 조차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휴대폰에 튜닝 애플리케이션이 널려 있고 진동 감지형 튜닝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쿠스틱 기타에도 아예 튜닝장치가 달려있기도 합니다. 제가 쓰는 타카미네 기타에도 튜닝기가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45년 전 그 당시만 해도 어떻게 튜닝을 하는지 조차 몰라서 방치하거나 기타 좀 친다는 동네 선배를 찾아가 조율을 해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며칠 치다 보면 기타 줄이 늘어나 음색이 살짝 변합니다. 조율이 안된 악기 소리는 불협화음이라 소음일 뿐입니다.


60-70여 개의 악기가 모인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할 때 오보에가 내는 A음(라)에 맞춰 모든 악기가 조율을 합니다. 오보에가 내는 표준음에 맞춰 관악기들이 음을 맞추면 제1바이올린 악장이 이 음을 넘겨받아 현악기들의 조율을 맞추게 됩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가 표준음이 된 것은, 오보에는 겹 리드(Reed ; 관악기 주둥이에 끼워 떨림으로 소리를 나게 만든 얇은 갈대 조각)를 통해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리드를 통해 배음(harmonics)의 구조가 정돈되고 기음의 주파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악기인지라 의도된 소리를 정확하고 선명하게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겹리드를 사용하는 목관악기로는 클라리넷도 있지만 오보에의 배음 구조가 고음역대까지 정확하게 도달하여 클라리넷 음색보다 더 날카롭고 선명하다고 합니다. 또한 오보에는 악기의 재질이 매우 단단하여 온도와 습도 같은 외부요인에 의해 음정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작용하기에 오케스트라 조율의 기준 악기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튜닝기가 없을 때는 소리굽쇠를 쓰기도 했는데 이 소리굽쇠가 440Hz로 A음(라)의 진동수를 내는 도구입니다. 기타 튜닝기의 기준음도 이 440Hz에 맞춰져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가서 처음 이 A음에 맞춰 조율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60-70개의 악기가 각각의 소리를 내고 합쳐져 장엄하고 웅장한 사운드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과정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율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해 내는 화음은 오묘함을 넘어 소리에 감정을 실어 관객의 귓전을 울리고 심성을 자극합니다. 인간이 소리로 자연을 표현해 내는 최고의 정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자연과 인간사회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수많은 규칙들이 맞물려 돌아가서 지금 이 시간의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조율을 통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동급으로 작동합니다. 조율된 상태에서 각각의 소리를 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듯이 인간사회도 이처럼 서로 조화롭게 조율되어 살 수 있으면 최적일 텐데 인간의 조율은 쉽지 않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약간의 불협화음을 인정하고 가는 오케스트라가 인간의 존재모습일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한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게 또한 인간의 사명 일겁니다. 불협화음을 하나씩, 조금씩 줄여나가려는 노력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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