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시작과 출발을 알고자 함이다. 곧 모든 존재의 원인을 묻는 일이다. 생명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저 산과 바위, 모래와 꽃, 그리고 하늘의 구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야 비로소 그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그 연속선 위에 생명이 등장하고, 동물이 나타나고, 인간이 출현하며, 이 모든 것을 사유할 수 있는 뇌(Brain)의 존재가 드러난다. 근원을 탐구한다는 것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꾸로 ‘나’를 알기 위해서는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나의 뇌와 세포를 살펴보는 데서 출발해 인간 존재 전체로 시야를 넓히고, 다시 지구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태양계와 은하를 넘어 138억 년 전 빅뱅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별먼지로 흩어져 나온 미세한 입자들 하나하나가 곧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따라가고 난 뒤에야 “아, 나라는 존재는 이렇게 형성되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은 삶의 다양한 방향을 추구하며 공동체를 굴러가게 만들었다. 도덕, 제도, 이념과 같은 사고 체계는 공동체 유지에 기여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실체 없는 허구에 가깝다. 반면 과학적 접근법은 실험과 검증을 통해 존재가 우주적 실체임을 하나씩 밝혀낸다. 우리는 불현듯 세상에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공존과 공생의 긴 과정 속에서 적응하며 이어져 온 존재임을 과학은 증명해 준다.
심지어 영원할 것 같은 태양조차 유한하다. 앞으로 약 50억 년 후, 태양은 적색거성이 되어 지구를 삼키고, 그 후에는 백색왜성이 되어 빛을 잃는다. 더 나아가 거대한 블랙홀의 중력에 빨려 들어가 별먼지로 흩어지고, 다시 다른 항성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다. 우주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는 순환이 있을 뿐이다. 불가에서는 이를 윤회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한 비유일 뿐이다. 우리는 그 언어의 의미에 갇혀 단순히 ‘반복’이라 이해하지만, 실상은 더 근원적이고 복잡한 순환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공생을 통해 진화해 왔다. 식물과 동물의 모든 세포 안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 필요한 ATP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는 과거 어떤 박테리아가 세포 속에 포획된 뒤 오랜 세월 공존하며 진화한 결과다. 생명은 이렇게 다른 존재와의 협력과 공생을 통해 살아남아 왔다.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바닷속에 사는 무척추동물 ‘콘볼루타(Convoluta)’라는 벌레는 ‘플라크토마스’라는 녹조류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콘볼루타는 녹조류를 섭취하지만 소화하지 않고, 오히려 체내 피부 밑에 보관한다. 체내에 머무는 녹조류는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그 산물에서 나온 영양분을 콘볼루타가 흡수한다. 이로써 콘볼루타는 따로 먹이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식물과 동물이 한 몸에서 공존하는 살아 있는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예시는 생명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주의 모든 근원은 단순하다. 가장 가벼운 원자인 수소에서 출발해, 양성자가 하나씩 더해져 주기율표를 채워 나가며 물질세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질세계는 우주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오늘날 과학이 밝힌 바에 따르면,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 중 ‘보통 물질’은 약 5%뿐이다. 나머지는 정체가 불분명한 암흑물질(27%)과 암흑에너지(68%)가 차지하고 있다. 인간이 감각하고 측정할 수 있는 세계는 고작 5%의 영역인 셈이다.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려면 근원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원인은 단 하나로 수렴한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지식도 그 시작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공중에 떠 있는 허상에 불과하다. 반대로 근원을 묻는 순간, 단순해지고 명료해진다.
따라서 근원을 탐구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아는 과정이다. 나를 이루는 세포,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 그보다 더 작은 원자와 입자, 그리고 빅뱅의 순간 흩어진 별먼지까지 시선을 확장해 갈 때, 나는 단순히 한 인간이 아니라 우주의 진화 과정이 빚어낸 한 장면임을 알게 된다. 내가 사는 이 순간은 수십억 년의 별빛과 원자의 흐름이 모여 잠시 나타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결코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이 짧은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나의 존재는 우연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와 공생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근원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을 더욱 충실히 살아내기 위한 사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