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분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600개가 넘는 정부 주요 전산 시스템이 일제히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공공기관 업무와 민원 서비스가 동시에 멈추면서 국민 생활 전반에 불편이 초래되었고, 무엇보다도 정부 전산망의 안전성과 신뢰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 정부 주요 시설의 재해복구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뼈아픈 경고였다. 이제는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점검하고,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디지털이 국가 운영의 핵심 체계가 된 시대에, 재해복구 시스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전산시스템이 해킹을 당하거나 정전, 화재 같은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쌍둥이 서버와 외부 클라우드 백업 같은 이중화 체계가 필요하다. 즉, 동일한 환경을 갖춘 시스템을 다른 지역에 마련해 두고, 본 시스템이 마비될 경우 즉시 전환해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니라, 국가 기능의 지속성과 국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생존 장치다.
이런 이중화 시스템의 모범 사례로 흔히 언급되는 것이 대한항공의 종합통제센터(Integrated Operations Control Center)다. 항공사는 24시간 하늘 위를 나는 수백 대의 항공기를 관리해야 하기에, 시스템이 1분만 멈춰도 곧바로 안전과 직결된다. 따라서 항공사는 위기관리와 재해복구 체계를 가장 철저히 운영하는 조직 가운데 하나다.
대한항공 종합통제센터는 하루 약 400여 대의 항공기를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항로와 운항 고도, 연료 상태, 기상 조건 등 비행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위험을 예측해 위기를 미연에 차단한다. 또한 운항, 객실, 정비, 탑재 관리 등 관련 부서 직원들이 통제센터에 함께 모여 최신 정보를 공유한다. 이들은 상황별 시뮬레이션을 통해 비정상 운항 상황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실시간 협업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대한항공이 본사 건물 내 통제센터 외에 별도의 건물에 비상상황실(Evacuation Room)을 마련해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본사 통제센터가 정전이나 화재 등으로 기능을 상실하더라도, 이 비상상황실은 기존 센터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즉, 항공기 운항 통제가 단 1분도 중단되지 않도록 이중 안전망을 갖춘 것이다.
더불어 대한항공은 매년 전사적으로 모의 사고 상황을 가정한 대응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위기관리를 구호로만 삼는 것이 아니라, 반복 훈련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도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보장하는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대형 항공사’ ‘글로벌 항공사’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항공기 규모나 노선 수 때문이 아니다.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위기대응 능력, 재해복구 능력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관리 능력은 곧 기업의 경쟁력이자 생명 연장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동일한 서버를 외부에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훈련을 진행하며,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따라서 경영진의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투자를 비용이 아니라, 서비스 유지와 고객 신뢰 확보를 위한 ‘필수 자산’으로 보는 경영 철학이 있어야 한다. 기업이든 정부든, 재해복구 투자를 단순한 예산 지출로만 여기면 위기 상황에서 치명적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태는 바로 그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재해복구 시스템의 필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실질적인 실행이 지연된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예비·보조 체계의 특성상 늘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하지만 위기는 늘 불시에 찾아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처는 국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의 재해복구 체계도 단순히 ‘예산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기본 인프라로 인식되어야 한다. 불이 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불이 났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차선책을 마련하는 지혜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건·사고는 아무리 대비해도 완벽히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예방하고, 어떻게 대응하며, 어떻게 복구하는가”다.
앞으로는 단발적 사건을 계기로 호들갑스럽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시스템을 점검하고, 모의훈련을 정례화하며, 비용이 들더라도 이중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한항공의 사례에서 보듯이, 위기관리는 매뉴얼을 넘어서 조직 문화와 철학으로 뿌리내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과 고객의 신뢰를 얻고, 조직의 존속을 보장하는 가장 현명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