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 중 하나로 흔히 ‘연고주의’가 지목된다.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으로 얽힌 인간관계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우리가 남이가?”,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경주 최 씨 54대 손입니다” 같은 표현들이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도, 사람들이 어떻게든 인연과 인맥을 만들어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가 누적되면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연고에 기반한 배타적 세력이 생겨난다. 정치판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여의도에 들어가면 누구나 입을 닫고 눈을 감는 이유 또한 이 정파적 연고주의의 함정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학연으로 얽힌 집단이 내란을 획책한 적도 있었으니, 연고주의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시선으로 보면, 연고(緣故)는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기 위한 본능적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세상사는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흘러간다. 누군가와의 인연이 새로운 기회를 낳고, 그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 학연과 지연, 혈연 같은 연결 고리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연고주의를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으로만 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것이 악용될 때이지, 관계를 맺는 행위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태생적으로 관계의 동물이다. 인류가 진화의 과정에서 언어와 사회를 발달시킬 수 있었던 이유도 ‘인연을 맺고 유지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이 점에서 연고는 단순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다만 그 에너지가 부정적 방향으로 흐를 때 사회를 좀먹는 연고주의가 되고, 긍정적 방향으로 작동할 때는 공동체를 단단하게 묶는 힘이 된다.
사실 연고의 문제는 한국 사회만의 특수성이 아니다. 선진화된 나라일수록 오히려 학연과 가문으로 연결된 상류층 네트워크는 더 견고하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졸업생들이 학교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치·경제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줄 사회’라는 비판은 한국만의 자화상이 아니라, 인간 사회 전반에 내재된 구조적 속성인 셈이다. 다만, 그 연고가 사회적 공정성을 침식시키느냐, 아니면 신뢰와 협력의 자산으로 기능하느냐는 그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와 제도적 장치에 달려 있다.
이 문제를 너무 멀리서 볼 필요도 없다. 우리 주변의 작은 모임과 행사 속에도 연고의 작동 원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동창회, 향우회, 직장 내 소모임, 스포츠 동호회, 심지어 카카오톡 단체방까지, 모두 인간이 인연의 폭을 넓히려는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다. 지금 가을 야구의 열기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가 팽팽한 승부를 펼칠 때, 팬들은 지역의 자긍심을 걸고 응원한다. 이처럼 ‘지연’은 때로 폭발적 응원문화로 승화되어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긍정의 힘이 된다.
학연, 지연, 혈연은 상황에 따라 빛이 되기도 하고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학연이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을 때는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학연이 서로를 응원하고 끌어주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때는 사회적 자본이 된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조정하고 관리하느냐에 있다. 나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 순기능을 잃지 않게 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가을이면 곳곳에서 열리는 동문 체육대회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졸업연도별로 청군과 백군을 나누어 승패를 겨루고, 웃고 떠들며 우정을 나누는 자리가 바로 학연의 순기능이다. 그중 누군가 출세해 스폰서를 맡으면 더 많은 동문이 모이고, 그 덕에 새로운 교류가 생긴다. 이런 현상은 인간이 관계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심리의 발현일뿐, 곧바로 연고주의의 부정적 낙인을 찍을 일은 아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며, 더 나은 위치와 더 큰 영향력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본능적으로 품고 산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얻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자 한다. 문제는 그 욕망이 공정의 원칙을 훼손할 만큼 커질 때다. 그때 연고주의는 사회적 병폐로 돌변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운 관계 맺음이고, 어디부터가 부당한 특혜인가’라는 경계선을 끊임없이 자문하는 일이다.
이 질문은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회 시스템의 균형에 관한 문제다. 보편타당한가? 합리적인가? 이런 원초적 질문을 놓치지 않는 사회일수록 연고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제어할 수 있다. 완전한 해법은 없다. 하지만 그 균형을 향해 스스로를 감시하고 성찰하려는 태도만이 유일한 길이다.
결국 학연·지연·혈연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피할 수 없는 운명적 구조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없애려는 시도보다는, 그 안에서 어떻게 더 투명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연고는 악이 아니다. 다만 그 힘이 불평등을 조장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호모 사피엔스가 스스로를 문명화시켜 온 방식, 그리고 앞으로도 지켜야 할 사회적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