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브레메사, 식탁 위의 대화가 만든 문화

by Lohengrin

스페인에는 ‘소브레메사(sobremesa)’라는 독특한 식사 문화가 있다. 직역하면 ‘식사 후의 시간’을 뜻하지만, 그 의미는 단순히 식사를 마친 뒤 테이블에 앉아 있는 행위를 넘어선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이어가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문화다. 음식을 나누며 웃고 이야기하는 그 순간 자체를 삶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다.


이 단어를 정확히 번역할 영어나 한국어 단어는 없다. 그만큼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어의 after-meal talk이나 table talk로는 그 따뜻한 여운과 여유를 담기 어렵다. 한국어로 굳이 말하자면 ‘식후 담소’쯤이 되겠지만, 그것은 관습이 아니라 단순한 행위로 들린다. 소브레메사는 ‘행위’가 아니라 ‘문화’다.


한국에서는 식사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경우가 드물다. 식사는 식사, 대화는 대화로 분리되어 있다. 식사를 마치면 대부분 자리를 옮긴다. 밥을 먹은 뒤엔 카페나 맥주집으로 이동해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우리에게 식탁은 음식을 먹는 공간일 뿐, 이야기를 이어가는 공간은 아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도심 상권이 밀집해 있어 식당 근처에 수많은 카페와 술집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스페인 사람들처럼 ‘식사 후의 대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문화는 반복된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사회의 질서로 굳어질 때 형성된다. 거기에는 기후, 경제, 공간 구조, 사회의 여유도 자연스레 스며든다.


스페인의 소브레메사는 단순한 식후 시간이 아니다. 식탁 위에서 펼쳐지는 대화의 향연이며, 인간관계의 윤활유다. 음식은 대화의 시작이고, 대화는 관계의 확장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즐긴 후에도 테이블에 머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시간 동안 일상의 스트레스가 풀리고, 삶의 속도가 잠시 멈춘다. 스페인의 따뜻한 기후, 느긋한 생활 리듬, 그리고 사람들의 낙천적인 성격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문화다.

소브레메사 자리에는 불편한 이야기가 없다. 배부르고 약간의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가볍고 유머러스하다. 웃음이 오가고, 사소한 일상조차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식탁 위의 대화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 음식은 더 이상 목적이 아니라 배경이 된다. 만약 자리를 옮겨 카페로 간다면, 그 대화는 전혀 다른 주제로 바뀔 것이다. 소브레메사는 ‘장소가 바뀌지 않음’에서 오는 온도와 지속성의 미학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한국 사회에도 이런 여유가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쉽지 않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계산서를 챙기고, 종업원이 테이블을 치우기 전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일부 인기 식당은 아예 ‘식사 시간 두 시간’이라는 제한을 걸어두기도 한다. 회전율이 곧 효율이 되고, 손님은 다음 손님을 위해 자리를 비워야 한다. ‘빨리빨리’ 문화는 식사 테이블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식사를 마친 후 습관처럼 카페를 찾는다. ‘2차’ 문화다. 밥은 밥대로,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따로 진행된다. 우리는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 문화에 더 익숙하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음식에 집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 식사한다는 것은, 음식 속에 담긴 긍정의 에너지를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다.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 기분 좋은 상태에서 나누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관계를 돈독히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식당을 찾고, ‘맛집’을 공유한다. 그것은 단지 입맛의 만족이 아니라 감정의 공유를 위한 공간 선택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먹는 동안 대부분의 대화를 쏟아낸다는 것이다. 식사 중에도 일 이야기, 가족 이야기, 미래 계획까지 동시에 오간다. 스페인이 ‘식후 대화의 나라’라면, 한국은 ‘식중 대화의 나라’다. 우리는 먹고 말하고 계산하고 일어서는 모든 과정을 멀티태스킹처럼 처리한다. 식탁 위에 여유가 자리할 틈이 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속도감이며, 효율 중심의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러나 전통은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도 그 본질은 유지된다. 한국에서도 최근 10여 년 사이 ‘식사 후 커피타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식사 후 무료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끝내던 시절에서, 이제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아메리카노 한 잔 앞에서 대화를 이어간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함께 식사하고 대화한다’는 본질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 변화는 우리 사회가 여유를 찾으려는 시도이자, 한국식 소브레메사의 진화된 형태라 할 수 있다. 결국 소브레메사가 상징하는 것은 ‘함께 머무는 시간의 가치’다. 식탁 위의 대화는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유지이자 감정의 교환이며,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행위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즐긴다. 반면 우리는 공간을 옮기고,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식사를 마친 뒤 바로 일어나지 않고, 잠시 앉아 커피 한 모금에 미소를 나누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지길 바란다. 소브레메사는 결국 ‘사람 사이의 온도’를 회복하는 문화다. 빠름이 미덕이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잠시 멈추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식탁 위에 남겨진 대화의 온기, 그것이 바로 스페인이 발견한 행복의 기술이자, 우리가 잊고 있던 여유의 언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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