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흐름을 한방에 알고 싶거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서는 관련분야의 포럼이나 세미나, 심포지엄 행사장을 직접 가면 된다.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 가전 및 IT전시회(CES)'처럼 전 세계 관련 기업들이 참가해 최신 기술과 신제품을 선보이는 행사도 있다.
국내에서도 수없이 많은 전시회 및 관련 분야의 지식을 쏟아내는 포럼 및 심포지엄들이 열린다. 주로 언론사 주도로 개최되지만, 잘 찾아보면 자기의 관심사를 주제로 한 행사들이 어디선가 반드시 펼쳐지고 있다. 찾지 않았고, 찾으려고 하지 않았기에 못 봤을 뿐이다.
어제는 "제로시대의 재설계 : 다시 쓰는 혁신"을 주제로 하는 SBS 디지털 포럼에 다녀왔다. 지난 9월 초에도 다른 언론사가 이틀에 걸쳐 진행한, 'AI와 미디어 : 다시 쓰는 콘텐츠, 조직, 비즈니스의 미래'라는 주제의 콘퍼런스에 참여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포럼들이 참가비를 받는 유료 행사인데 반하여 SBS 포럼은 거의 유일하게 일반인들의 참가신청을 받아 무료로 진행한다.
최근에 열리고 있는 포럼이나 심포지업들을 보면 2022년 11월 말 chatGPT가 출시되어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뀐 이후, 모든 지식 및 비즈니스의 방향이 AI로 쏠리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변혁과 혁신을 이야기하는데 AI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이것을 트렌드라고 한다.
LLM 기반의 chatGPT가 뜨기 전에 기업들을 그렇게 휘둘러 패던 ESG는 다 어디로 갔나?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을 위해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갖추라고 그렇게 닦달하더니 지금은 눈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다. AI가 뜨기 전 언론사들의 포럼 단골 메뉴가 ESG였다. 지금 ESG는 사라진 단어가 되어 버렸다.
사실 포럼이나 심포지엄들이 언론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지는 근 10년 세월이 넘는다. 종이신문이 쇄락하고 기업들의 광고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빠지면서 수익이 나빠진 언론사들이 새로운 수입전략으로 내세워 기업들에게 후원을 강요하는 도구로써 활용된 것이다. 언론사에서 하는 포럼이나 행사들이 어찌나 많은지, 주로 봄가을에는 같은 날 같은 주제로 두세 개 포럼이 동시에 개최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체 홍보담당자들이 행사장을 돌며 눈도장 찍고 돌아다니기 바쁘다. 홍보담당자들은 포럼 주제가 뭔지, 어떤 내용으로 하는지 들여다볼 틈도 없다. 심지어 개막식 때 자리 채워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VIP들이 빠져나가면 같이 우르르 나가 다른 행사장으로 달려간다. 포럼장 객석이 텅텅 빌 정도의 행사도 비일비재했다.
지금도 그럴까? 아마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포럼이나 심포지엄 행사가 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체로부터 행사비 후원으로 삥 뜯는 명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어제 SBS 행사를 그런 하류 언론사 행사로 묶어 도매 끔으로 넘기는 것은 아니다. 어제 포럼은 작년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데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MIT 경제학과 교수가 기조강연자로 온라인 연결되어 강연을 했고 딥러닝의 대모로 불리는 월드랩스 공동 창업자이자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페이페이 리(Fei Fei Li)도 연사로 나서, 텍스트 기반에서 공간 지능으로 넘어가는 '넥스트 AI'에 대한 생각을 전해주었다.
특히 이번 SDF 포럼은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모두 20명의 연사들이 11개 세션별로 주제 발표를 했는데, 그중에서 영상 특화 AI 플랫폼을 만들어 영상 멀티모달을 선도하고 있는 트웰브랩스 이재성 대표와 AI 반도체 구동 시 드는 전기 에너지를 적게 쓰는 전용 가속기를 개발하고 있는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의 강연이 인상적이었다. 30대의 젊은 유니콘 기업 대표들이 세계 최고의 AI 시장 무대에서 인정받고 당당히 앞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해서 든든하기도 했다. 또한 로보틱스 AI를 선도하는 중국에서 실시간 통번역이 가능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아이플라이텍의 자오 샹(Zhao Xiang) 부사장은 강연중 발표내용을 화면으로 직접 구현해 중국어와 영어로 실시간 번역되는 기술을 보여주었다. 사실 실시간 통번역은 삼성갤럭시 번역 AI기능 중, 듣기 모드도 거의 완벽하게 작동하는 기술이라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아이플라이텍은 이 음식인식기술을 교육과 의료, 그리고 소리를 분석해 불량 가능성을 체크하는 산업현장에 접목해 경쟁력을 높이는 플랫폼 기술로 확장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반면 매번 이런 포럼과 심포지엄에 나올 때마다 아쉬운 것이 있다. 해당 분야의 트렌드를 아는 정도는 유용한데 인사이트까지 챙기는 것은 어렵다는 점이다. 세계적 석학들이 전하는 관점을 보면 보편 타당성을 축으로 한다. 새로운 스토리로 와닿지 않는다. 짧은 강연시간 때문에 압축해서 전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고 객관적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학자적 시각을 전하다 보니 현실과 겉도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사용하는 용어자체가 책상 위의 용어에 그칠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청중들은 그래서 어떻게 실행됐고 결과물은 어떻게 나왔고 실생활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가 궁금한데 말이다.
지식은 보는 만큼, 듣는 만큼, 경험하는 만큼 최신판으로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세상의 변화는 늘 앞서가고,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어느 순간 ‘과거의 언어’로 현재를 설명하게 된다. 트렌드의 방향을 읽고, 흐름의 중심을 파악하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생존 전략이다.
그래서 다시 다른 포럼 현장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보려는 마음,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흐름을 손끝에서 느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지식의 현장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 현장에 발을 딛는 사람만이 시대의 변화를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