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월요일(24일), 덴마크의 거대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가 던진 보도자료 하나가 전 세계 뇌과학계와 제약업계를 강타했습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을 평정한 '위고비(Wigovy)'의 신화가 알츠하이머라는 난공불락의 요새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다소 충격적이고 뼈아픈 고백이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가 지난 2년간 무려 3,808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의 알츠하이머 임상 3상 시험(Evoke 연구)에서 실패를 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소식은 단순히 하나의 신약 개발이 좌절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우리가 뇌라는 소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사실 과학계는 알츠하이머를 ‘제3의 당뇨병(Type 3 Diabete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뇌가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제대로 쓰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병이라는 가설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적의 비만·당뇨약으로 불리는 GLP-1 수용체 작용제(세마글루타이드)가 뇌의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이 호르몬은 뇌의 만성적인 염증을 가라앉히고 대사 기능을 깨워 뇌세포의 ‘기초 체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임상 결과는 흥미로우면서도 잔인했습니다. 약물을 투여받은 환자들의 뇌 속 염증 수치와 아밀로이드 관련 바이오마커는 분명 개선되었습니다. 수치상으로는 뇌가 건강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환자와 가족들이 가장 간절히 원했던 ‘기억력’과 ‘인지 기능’의 추락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뇌 속의 환경을 청소하고 보일러를 고쳐 따뜻하게 만들었음에도, 이미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기억의 기둥을 다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입니다. 먹는 약(경구용)이 가진 뇌혈관장벽(BBB) 투과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결론적으로 뇌의 ‘대사 개선’만으로는 이미 쌓여버린 독성 단백질의 물리적 파괴력을 이길 수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실패는 역설적으로 현재 인류가 가진 유일한 무기들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합니다. 수십 년간 수백 개의 약물이 실패한 이 전쟁터에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내고 살아남은 ‘근본 치료제’는 단 두 종류뿐입니다. 바로 ‘레켐비(Lecanemab)’와 ‘키선라(Donanemab)’입니다.
이 두 약물은 우회로를 찾지 않습니다. 알츠하이머의 직접적인 원인인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라는 적군을 향해 정밀 타격하는 항체 치료제들입니다. 2023년 승인되어 한국에서도 처방이 시작된 에자이·바이오젠의 ‘레켐비’는 2주에 한 번 정맥 주사를 통해 병의 진행을 약 27% 지연시킵니다. 이는 알츠하이머를 만성질환처럼 ‘관리’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여기에 이어 2024년 7월 등장한 릴리의 ‘키선라’는 조금 더 과감한 전략을 취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맥 투여하되, 뇌 속의 아밀로이드가 모두 제거되면 투약을 중단합니다. ‘단기 집중 치료’를 통해 적을 섬멸하고 빠지는 전략입니다.
물론, 도네페질(Aricept)이나 메만틴(Namenda)처럼 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해 희미해지는 기억을 잠시 붙잡아두는 전통적인 약물들도 여전히 처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증상을 잠시 완화할 뿐, 병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멈추지는 못합니다.
이번 노보 노디스크의 도전과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알츠하이머라는 적은 보급로(대사 및 염증 관리)를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적의 본진(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을 직접 타격하는 물리력이 필수적이며, 동시에 뇌가 버틸 수 있는 체력도 필요합니다. 결국 미래의 의학은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과학이 실패를 딛고 답을 찾아가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직 주사 한 방이나 약 한 알로 뇌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적군인 아밀로이드와 타우가 뇌 속에 진지를 구축하지 못하도록, 혹은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도록 매일의 삶을 정비하는 일입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일상의 리듬이 뇌의 염증을 줄이고 대사를 돕는 가장 강력한 예방책입니다. 알츠하이머와 만나 악수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혹여 훗날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한다면 그 만남이 최대한 늦어지기를, 그때쯤엔 의학의 분발로 이 긴 전쟁이 끝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오늘도 뇌라는 신비로운 우주를 탐구하며, 실패조차도 진실을 향한 한 걸음임을 믿습니다. 건강한 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