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을 나가거나 피트니스센터로 가서 운동을 할 때마다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 든다. 단순히 심장을 뛰게 하고 근육을 데우기 위함이 아니다. 나의 두 다리가 뇌에게 보내는 간절한 신호, 그 생물학적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흔히 "머리가 복잡하면 나가서 좀 뛰어라"라고 말한다. 땀을 흘리고 나면 거짓말처럼 생각이 정돈되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이를 '엔도르핀'이나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설명해 왔다. 기분이 좋아진다는 설명으로는 충분했지만, 실제로 머리가 '상쾌해지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최근 뇌과학은 이 현상 뒤에 숨겨진 놀랍도록 정교한 삼각관계를 밝혀냈다. 바로 운동(Muscle), 카텝신 B(Cathepsin B), 그리고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 뇌 유래 신경 영양인자)의 연결고리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그려내는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왜 움직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진화론적 해답을 마주하게 된다.
오래전 해부학 교과서에서 근육은 그저 뼈를 움직이는 '기계장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대 생물학에서 근육은 거대한 '내분비 기관'으로 재정의된다. 우리가 달리고, 계단을 오르고, 스쿼트를 하며 허벅지에 타는 듯한 자극을 느낄 때, 근육은 단순히 에너지만 태우는 것이 아니다. '마이오카인(Myokine)'이라 불리는 수백 가지의 호르몬 유사 물질을 혈액 속으로 뿜어낸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물질이 바로 '카텝신 B(Cathepsin B)'다.
사실 카텝신은 생물학자들에게 꽤나 익숙하면서도 험상궂은 존재였다. 세포 내의 쓰레기나 노폐물을 처리하는 '청소부(단백질 분해 효소)' 역할을 하거나, 암세포가 주변 조직을 뚫고 전이할 때 사용하는 무기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청소부가 운동할 때만큼은 근육에서 대량으로 생성되어, 혈관이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뇌를 향해 전력 질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 뇌는 아무 물질이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뇌혈관장벽(Blood-Brain Barrier)'이라는 견고한 성벽이 뇌를 둘러싸고 있어, 외부 물질의 침입을 철저히 막는다. 뇌에 좋다는 수많은 약물이 실패한 이유도 이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근육에서 출발한 '카텝신 B'는 이 철옹성을 통과한다. 마치 왕의 밀서를 품고 성문을 통과하는 전령처럼, 뇌의 가장 깊숙한 곳, 기억과 학습의 중추인 '해마(Hippocampus)'로 직행한다. 해마에 도착한 카텝신 B는 즉시 외친다. "주인이 지금 움직이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뇌를 성장시켜라!" 이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뇌 속에서는 기적이 일어난다. 바로 세 번째 주인공인 'BDNF'가 깨어나는 것이다.
하버드 의대의 존 레이티 교수는 BDNF를 일컬어 "뇌를 위한 기적의 비료(Miracle-Gro)"라고 명명했다. BDNF는 뇌세포가 죽지 않도록 보호할 뿐만 아니라, 줄기세포를 자극해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어내고, 세포 간의 연결망인 시냅스를 굵고 튼튼하게 만든다.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어제 읽은 책 내용을 기억하며,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모두 BDNF 덕분이다. 카텝신 B가 스위치를 누르면, BDNF라는 공장이 가동되어 뇌를 물리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다.
왜 하필 근육을 쓸 때 뇌가 좋아지도록 진화했을까? 바로 '생존'과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먼 옛날, 인류가 전력 질주를 해야 할 때는 맹수에게 쫓기거나 사냥감을 쫓을 때뿐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뇌는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도주로를 계산하며 사냥감의 패턴을 예측해야 했다. 즉,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순간이야말로 뇌가 가장 명석하게 깨어 있어야 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자연은 '움직임'과 '인지 능력 향상'을 하나의 회로로 묶어두었다. 그것이 바로 운동 → 카텝신 B → BDNF로 이어지는 알고리즘이다.
현대인은 앉아서 생활한다. 근육은 침묵하고, 카텝신 B는 뇌로 배달되지 않으며, BDNF의 샘은 말라간다. 어쩌면 현대인에게 급증하는 우울증과 치매, 그리고 인지 능력의 저하는 '움직이지 않는 삶'에 대한 자연의 경고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하루 일정표에 운동을 배치해 놓았다. 추워서 밖으로 뛰는 조깅을 그만두고 피트니스센터로 옮긴 지 한 달째다. 나의 달리기와 운동은 단순히 뱃살을 빼기 위함이 아니다. 내 허벅지 근육이 뇌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연애편지이자, 뇌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지적인 투쟁이다. 지금 무기력하거나 머리가 꽉 막힌 느낌이 든다면, 고민하지 말고 운동화를 신자. 다리 근육 속에는 이미 뇌를 다시 태어나게 할 기적의 물질이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깨우지 않아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움직임이 핵심이다. 나는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