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by Lohengrin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 배운다(learn)는 것은 뭔가? '받아 얻는다'는 뜻이다. 무엇을 받아 얻는 것인가? 지금까지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즉 공부를 통해 얻는 모든 지식과 지혜, 체험 등이 포함된다.


공부(工夫, study)는 '학습으로 자신의 인성과 철학 등을 발전시키기 위해 가꾸어 나가야 할 의무'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는 공부를 '학교'라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둬놨다.


그리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공부는 들판을 뛰어다가는 망아지처럼 놓아버린다. 그렇게 세월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 기억인출에 문제가 생기고 몸도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눈치챈다.


몰라도 살고 공부 안 해도 일상생활을 하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산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과연 '잘 사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한다. 그냥 삼시세끼 밥 먹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인 것이다.


'아닐 것이다'라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살면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이고 유지하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 고 또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학교 이후에 내팽개쳐놓은 공부를 다시 마주해야 한다. 방정식 풀고 역사공부 다시 시작하고 영어 단어 다시 외우라는 소리가 아니다. 공부의 영역을 삶 전체로 넓히라는 거다.


학교공부라는 틀로 재단해 버리면 또다시 '하기 싫은 공부'가 되어 버려 공부를 더 멀리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 그것이 공부다.


돌아보면 삶 자체가 공부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간과 만나기에 그 순간순간 시간 시간이 모두 공부의 과정이다. 학창 시절 질려버린 그 공부가 아니라 삶과 생존의 공부를 매 순간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공부인지 모르고 살았을 뿐이다. 지금 내가 숨 쉬고 살아있음은 그만큼 생존 공부를 해 온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논어 자장 편에 자하(子夏)가 말한 "일지기소무(日知其所無) 월무망기소능(月無忘其所能) 가위호학야이의(可謂好學也已矣)"가 나온다. "날마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달마다 자신이 할 수 있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공부는 그런 것이다. 게으름을 경계하는 것이다. 게으름은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다. 생업에 바빠서, 눈이 침침해서, 공부는 젊어서 하는 거지 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 했다.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의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의 양만큼 다양성을 간접 경험한다는 의미다.


결국 책과 공부는 다양성과 만나는 일이다. 다양성의 경험은 생존의 필수 코스다. 우연의 확률로 만드는 삶의 여정에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필연의 확률로 잡아채는 일이다. 그래서 책과 공부는 다양성을 익히는 수련이 도구이자 연습과정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검호였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1,000 일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10,000 일의 연습을 련(鍊)이라고 한다. 이 단련이 있어야 만이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라고 했다.


삶을 사는 고수는 모두 이와 같다. 공부와 단련을 통해 자기 무장을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공부와 단련의 도구가 꼭 책일 필요는 없다. 세월이 바뀌어 공부하는 도구도 진화했다. 아직 오감이 동원되는 책의 효용성이 더 클 수 있지만 AI와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도구들이 즐비하다. 들여다보면 온갖 곳에 공부할 도구와 지식과 지혜가 널려있다. 내가 신경 써서 찾지 않았고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고 혹여나 들여다볼 때 시선을 자극하고 끄는 쇼츠와 같은 동영상에 팔려 엉뚱한 곳으로 쓸려갔을 뿐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세상의 지식과 지혜가 밥 떠먹여 주듯 앞에 있는데 숟가락 정도는 들고 덤벼볼 일이다. 계속 물어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못 보고 있는 것인지, 급변하는 세상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가장 차별적인 것이 지식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만큼 극명한 차이는 없다.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많이 아는 것이 장땡이다. 그래야 융합할 수 있고 더 좋은 삶을 버무릴 수 있다. 너무도 자명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주변을 추스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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