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길, 인문과 과학 사이

by Lohengrin

아침 햇살이 동녘 산마루를 넘어 아파트의 차가운 외벽을 타고 흐르다, 거실 창을 통해 집 안 깊숙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빛은 거실을 가로질러 반대편 벽면에 가느다란 선을 긋습니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공기 중의 미세한 먼지들이 그 빛줄기 속에서 마치 현미경 아래 놓인 생명체들처럼 일제히 무도를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던 세계가 빛의 간섭으로 인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한참을 서성이며 거실을 비추던 햇빛은 구름 뒤로 몸을 숨기며 순식간에 자취를 감춥니다. 그 짧은 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이 빛줄기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지금 목격하고 있는 이 신비로운 빛의 통로는 과학적으로 틴들 현상(Tyndall effect)이라 불립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존 틴들이 발견한 이 현상은, 빛이 콜로이드(Colloid)라고 불리는 미세한 입자들을 통과할 때 산란되면서 빛의 경로가 눈에 보이게 되는 현상입니다. 공기 중의 먼지나 수증기, 혹은 물속의 미립자들이 빛의 파장과 부딪히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과정에서 우리 눈은 비로소 '빛의 길'을 인식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과학적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호수나 바다의 푸른빛을 단순히 틴들 현상만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레일리 산란(Rayleigh scattering)과 물 분자의 고유 흡수 특성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틴들 현상은 입자의 크기가 빛의 파장과 비슷하거나 클 때 발생하며, 레일리 산란은 입자가 빛의 파장보다 훨씬 작을 때 일어납니다. 아주 깨끗한 물이 푸르게 보이는 이유는 물 분자가 가시광선 중 파장이 긴 붉은색 계열을 흡수하고, 파장이 짧은 푸른색 빛을 사방으로 산란시키기 때문입니다.


반면, 호수에 미세한 빙하 퇴적물이나 석회질 입자가 섞여 '비취색'이나 '에메랄드빛'을 띠는 것은 전형적인 틴들 현상의 결과입니다. 입자의 크기와 농도에 따라 빛이 반사되고 굴절되는 양상이 달라지며 물의 색깔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사진작가들에게 틴들 현상은 '빛 내림(Crepuscular rays)'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는 최고의 피사체입니다. 안개 자욱한 숲 속에서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빛줄기는 몽환적이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평범한 풍경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립니다. 한여름 폭우가 지나간 뒤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은 극명한 명암 대비를 이루며 대자연의 장엄함을 연출합니다.


이러한 시각적 경이로움은 종교적 상징으로도 빈번히 활용됩니다. 어두운 성당의 스테인리스 창을 통해 기도하는 이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빛줄기는 마치 신의 은총이나 성령의 임재를 형상화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보이지 않던 빛이 실체가 되어 내려앉는 모습에서 인간은 초자연적인 힘을 느끼고 경외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감성적인 풍경을 넘어, 틴들 현상은 현대 과학의 실용적인 도구로도 쓰입니다. 우유 속의 유지방 함량을 측정하거나, 액체 내에 부유하는 단백질의 농도를 분석할 때 이 현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빛을 쏘아 산란되는 정도를 측정함으로써 육안으로는 판별할 수 없는 미세한 성분의 양을 '숫자'로 치환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우유가 흰색으로 보이는 이유 역시 틴들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유 속에 분산된 지방 입자와 카세인 단백질 입자들이 가시광선의 모든 파장을 골고루 산란시키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희고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하얗다'라고 느꼈던 우유 한 잔이 과학의 시선으로는 수만 개의 입자가 빛과 충돌하는 역동적인 현상의 집합체가 됩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아이작 뉴턴이 프리즘으로 무지개의 원리를 밝혀냈을 때, 무지개에 깃든 시적 신비가 파괴되었다며 '무지개를 풀었다(Unweaving the Rainbow)'고 한탄했습니다. 과학이 감성을 메마르게 한다는 통념이 담긴 표현입니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무지개를 풀며』를 통해 키츠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는 무지개의 원리를 아는 것이 결코 그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주의 정교한 질서를 깨닫게 함으로써 더 큰 예술적 감동과 경외를 선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결코 낭만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촘촘한 과학적 인과관계를 이해할 때, 우리의 감동은 비로소 단단한 뿌리를 내립니다. 두 팔 들어 자연의 신비를 막연히 찬양하는 것이 허상에 기반한 자기 위안이었다면, 과학적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우주와 내가 맺고 있는 실체적 관계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아침 햇살에 드러난 거실의 먼지 한 톨에서도 우리는 빛의 직진성과 산란의 법칙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틴들 현상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예쁜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입자와 파장의 상호작용'이라는 우주의 질서를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상의 단상을 과학의 언어로 들여다보는 일은, 디지털 격차를 겪는 많은 이들에게 '아는 즐거움'과 '세상을 향한 자신감'을 선사하는 고귀한 여정입니다. 알고 나면 세상은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이나 허망한 신비의 대상이 아닙니다. 숫자로 보이고, 색깔로 증명되며, 논리로 설명되는 명확한 실체가 됩니다. 그리고 그 명확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감동을 느낍니다. 알고 봐야 감동이 배가 됩니다. 거실을 메운 그 빛줄기가 감상의 단순한 햇살이 아닌, 더 깊은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길잡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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