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은 눈부신 속도로 미시 세계를 파고들고 있다. 양자역학의 원리로 생명 현상을 설명하려 하고, DNA 염기서열을 추적해 질병의 근원을 설계도 단위에서 수정하려 한다. 인류가 도달한 지식의 끝단은 이토록 정교하고 복잡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건강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가장 원초적인 질문으로 회귀하고 있다. “오늘 잘 먹었는가? 잘 잤는가? 그리고 잘 비워냈는가?”
이 소박한 세 가지 질문 속에 생명의 모든 신비가 응축되어 있다. 생명은 수조 개의 세포가 각자의 위치에서 일으키는 거대한 합주이며, 그 정점에는 ‘신체’라는 단일체가 존재한다. 원자 단위의 미시적 분석으로 근원을 추적하는 동시에, 그 몸뚱이가 일상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다시 살피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 과학이 마주한 거대한 융합이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란 결국 일상을 무난히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 중심에는 ‘먹고 자고 싸는’ 순환의 리듬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어느 것 하나 균형이 깨지면 생명이라는 정교한 시계추는 즉각 비명을 지른다. 먹는 것이 부실하면 기운이 없고, 밤잠을 설치면 다음 날 아침의 해상도는 흐릿해진다. 단 하루만 화장실에서 배변을 못 해도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이처럼 생명을 담고 있는 몸의 균형 자체가 곧 ‘살아있음’의 본질이다.
이러한 ‘일상의 과학’에 최근 획기적인 이정표가 발표됐다. 이틀 전 6일,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에 게재된 “질병 예측을 위한 멀티모달 수면 파운데이션 모델(A multimodal sleep foundation model for disease prediction)”이라는 논문이 그 주인공이다.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진이 발표한 이 연구는 우리가 매일 밤 경험하는 ‘잠’이 단순한 휴식을 넘어, 미래의 건강을 예측하는 거대한 데이터 저장소임을 증명해 냈다.
연구의 핵심인 ‘SleepFM’ 모델은 단 하룻밤의 수면 데이터(수면 다원 검사, PSG)만으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130가지 이상의 질병 위험을 놀라운 정확도로 예측한다. 수치로 보면 더욱 경이롭다. 파킨슨병(89%), 치매(85%), 고혈압성 심장질환(84%), 심근경색(81%), 전립선암(89%), 유방암(87%) 등 중증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높은 확률로 짚어냈다. 특히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을 예측하는 지표인 C-index에서 0.84를 기록하며, 기존의 인구통계학적 모델을 압도하는 성능을 보였다.
이 모델이 특별한 이유는 ‘멀티모달(Multimodal)’ 접근 방식에 있다. 뇌파(EEG), 심전도(ECG), 근전도(EMG), 호흡 패턴, 혈중 산소 농도 등 수면 중 발생하는 다양한 생체 신호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연구팀은 6만 5천 명 이상의 참가자로부터 얻은 58만 시간 이상의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시켰다. 이를 통해 AI는 뇌파와 같은 특정 신호가 누락되더라도 심박수나 호흡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전체적인 건강 지표를 복원해 내는 유연함까지 갖추었다.
연구진은 이 AI 모델이 단순한 수면 단계 구분을 넘어, 인체가 수면 중에 보내는 복잡한 신호를 이해하는 ‘언어’를 배웠다고 표현한다. 잠은 몸이 남기는 가장 정직한 리포트다. 깨어 있을 때는 의식의 통제 아래 숨겨져 있던 산소포화도의 변화, 수면 사이클의 불규칙한 반복, 호흡의 미세한 균열과 같은 미세한 떨림들이 잠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선명한 흔적으로 남는다. 그리고 AI는 그 흔적을 ‘미래 질병의 지도’로 번역해 낸다.
이는 과거 정신분석학의 거장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가졌던 잠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뒤바꾸는 사건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무의식의 심연을 해석하려 애썼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통찰을 제시했다. 하지만 뇌과학자 알렌 홉슨(J. Allan Hobson)이 지적했듯, 프로이트의 이론은 직관적이었으나 과학적 검증이라는 파고를 넘지 못했다. 알렌 홉슨이 "프로이트는 50%는 맞고 100% 틀렸다"하고 한, 꿈에 대한 주관적 해석에 집착했던 시대가 가고, 이제 AI를 통해 잠을 ‘객관적 수치’로 해석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잠은 무의식의 탈출구가 아니라, 신체 기능을 측정하는 가장 정교한 바로미터로 재정의된다.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 전부터 수면 패턴에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를 포착함으로써, 우리는 치매나 심혈관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비록 이 연구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소급적 연구 단계이며, 향후 실제 임상에서의 전향적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수면의 언어’를 과학의 영역으로 완벽히 끌어올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성취다.
46억 년 지구 역사의 기나긴 여정 끝에 탄생한 인간이라는 생명체에게 잠은 결코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시간이자, 낮 동안 쌓인 노폐물을 청소하고 내일의 생존을 설계하는 가장 역동적인 시간이다. "잘 잔다는 것"은 단순히 피곤을 푸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몸의 정교한 시스템이 조화롭게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결국 '수면의 질'이 곧 '건강의 질'이며 '삶의 질'이다. 첨단 AI 기술이 우리에게 일깨워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고전적인 지혜다. 생명은 오묘하며, 그 신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매일 밤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다.
현대 과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AI조차 결국 우리의 일상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리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이 단순하고도 숭고한 순환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뇌과학과 AI가 교차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남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