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움직일 뿐

by Lohengrin

'산다'는 것은 매 순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공간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하지만, 인생은 이미 닦여진 길을 가는 관광이 아니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헤쳐 나가는 개척에 가깝다. 우리는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을 알고, 계절의 순환을 믿으며 살아가기에 미래가 익숙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우리가 맞이하는 '오늘'은 우주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고유한 시간이다.


이 생경함의 극단에 있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와 그 소회를 밝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철저히 '처음'이자 '마지막'인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죽음이라는 거창한 사건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 뇌를 스치는 생각들은 모두 생애 최초의 사건들이다. 결국 존재한다는 것은 매 찰나 새로움과 조우하는 일이며, 우리는 평생 '초보자'의 신분으로 생을 항해하는 셈이다.


모든 순간이 처음이기에 삶은 본질적으로 고달플 수밖에 없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서 완벽한 지도를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삶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될 수 없다. 부모가 되는 것도, 노년이 되는 것도, 심지어 오늘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조차 우리는 늘 처음 맞이하는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임기응변'할 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외부 자극을 예측하고 그에 대응하는 가소성을 진화시켜 왔다. 예측 모델이 빗나가는 순간, 즉 '오류'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뇌는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 임기응변의 대처 능력이 곧 삶의 질을 결정한다. 닥쳐온 상황을 얼마나 유연하게 수용하고, 그것을 자신의 시간으로 흡수하여 '자기화'하느냐가 인생의 숙련도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삶을 잘 산다는 것은 고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파도가 덮쳐올 때 균형을 잡고 다시 노를 저을 수 있는 응용력을 갖추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새로운 순간 앞에서 주춤거리는가? 망설임의 근원은 '불투명성'에서 오는 본능적인 공포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확실한 것을 선호하고 불확실한 것을 위협으로 간주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라고 느낄 때,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시뮬레이션한다. 결과가 예측되면 우리는 더 이상 도전하지 않는다. 대신 '계산'을 시작한다. 투입 대비 효율을 따지고, 리스크를 분석하며, 어떻게 하면 손해 보지 않고 이 미래를 소비할 것인지 궁리한다.


이 '계산된 삶'은 안전해 보이지만, 실상 성장이 멈춘 상태다. 이미 알고 있는 길만 가는 것은 뇌의 신경 회로를 고착화시키고, 삶의 생동감을 거세한다. 망설임은 우리가 미지의 영역 앞에 서 있다는 증거이자, 동시에 우리가 도약해야 할 지점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모른다'는 겸손함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개척이 시작된다.


개척의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실패가 따른다. 앞을 알 수 없는 길을 가는데 단 한 번의 비틀거림도 없기를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상투적인 격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실패는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최적의 경로를 찾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다. 실패해보지 않은 인생은 단 한 번도 자신의 한계선 밖으로 발을 내디뎌 본 적이 없다는 증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안전한 범위 내에서만 머물렀기에 평탄할지는 모르나, 그 삶에는 서사가 없다. 시련의 파고를 넘어본 사람만이 잔잔한 바다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듯, 도전 뒤에 찾아오는 성취는 오직 실패의 맛을 아는 자에게만 허락된 보상이다. 실패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으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움직임'에 있다. 동물의 '동(動)'은 곧 움직임을 뜻한다. 식물과 달리 동물이 뇌를 갖게 된 진화적 이유는 복잡한 환경 속에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기 위해서다. 즉, 움직이지 않는 뇌는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것과 같다.


'산다는 것'은 대단한 철학적 수사가 필요치 않다. 그냥 살아내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가보지 않은 길에 발을 들이는 그 행위 자체가 바로 도전이다.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좋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 망설임을 깨고 한 발짝 내딛는 것, 그 역동성 자체가 생명력의 정수다.


인생은 완벽하게 완성해야 할 조각품이 아니라, 매 순간 임기응변으로 그려나가는 미완의 스케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미지의 시간을 기꺼이 환대하자. 우리는 움직이기 위해 태어났고, 그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생은 매 순간 눈부신 황홀경이자 도전이다. 그냥 하자. 움직이자. 그것이 살아있는 존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고의 특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을 산으로 간다. 오랜만에 보게 될 설경이 눈에 선하다. 보고 싶어 그냥 떠난다. 아무 이유 없다. 그저 움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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