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미래를 필연의 현재로 만드는 법

by Lohengrin

우리는 매일 똑같은 태양 아래 눈을 뜨고, 익숙한 거리를 지나며,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소비한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세상은 이미 '완결된 사전'과 같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으며, 중력에 의해 모든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당연함의 두꺼운 껍질을 깨고 '아무도 보지 못한 한 점'을 포착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창의적 인간'이라 부른다.


창의성은 화려한 상상력이 아니라,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풍경 속에서 '결핍'이나 '부자연스러움'을 찾아내는 예리한 시선에서 출발한다. 뉴턴의 위대함은 떨어지는 사과를 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기 전, 가지에 고정되어 있던 사과'에 의문을 품은 데 있다.


빗방울이나 눈송이는 하늘에 고정되어 있던 적이 없다. 그것들은 태생부터 낙하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사과는 달랐다. 그것은 분명히 나무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왜 저것은 저기에 멈춰 있었는가? 그리고 왜 지금은 움직이는가?" 뉴턴은 모두가 낙하라는 '운동'에 집중할 때, '정지'라는 상태를 유지하게 했던 보이지 않는 힘의 균형을 본 것이다. 사과를 당기는 힘이 있다면, 저 하늘에 떠 있는 달 또한 지구로 당겨지고 있어야 한다는 비약적인 통찰. 이 작은 시선의 차이가 인류를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거대한 빛으로 인도했다. 뉴턴은 '누구나 봤는데,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본 사람'이다.

뉴턴과는 또 다른 결의 창의적 인간이 바로 베토벤이다. 그는 음악가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청력 상실'이라는 절망적인 환경에 처했다. 누구나 소리를 '듣는 것'이 음악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믿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음악은 멈춰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당연한 논리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소리가 사라진 적막의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물질로서의 소리'가 아닌 '진동과 구조로서의 음악'을 보았다. 남들이 귀로 소리를 소비할 때, 그는 온몸의 감각으로 음악의 골격을 재구성했다. 그의 후기 교향곡들이 보여주는 파격적인 화성과 거대한 구조는 그가 외부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었기에 가능했던 '내면의 우주'였다. 베토벤에게 창의성이란, 감각의 결핍이라는 극단적인 우연 앞에서 '듣지 못함'을 '새로운 방식으로 감각함'으로 치환해 버린 용기였다. 그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소리의 본질을 설계하는 사람이 됨으로써 음악의 지평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인간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발생하는 '필연적 몸부림'이다. 우리는 흔히 결과를 계산하고 움직이려 하지만, 사실 계산이 가능한 영역은 이미 과거가 된 데이터들뿐이다. 진짜 미래는 언제나 우연과 확률의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결과를 알면 그것은 '행동'이 아니라 '계산'이 된다. 계산은 안전하지만 아무런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시험 문제를 풀듯 정답을 찾는 삶에는 창조가 끼어들 틈이 없다. 반면, 결과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딛는 발걸음, 즉 '행동'은 미래라는 추상적인 가능성을 '현재'라는 구체적인 현실로 끄집어 당기는 유일한 장치다.

뉴턴이 사과의 정지를 의심하며 펜을 들었을 때, 베토벤이 들리지 않는 건반을 두드리며 악보를 써 내려갔을 때, 그들은 결과를 확신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단지 "모르기에 움직여 봐야 한다"는 생명 본연의 의지에 충실했을 뿐이다. 이 무모해 보이는 행동의 선택에는 반드시 용기와 책임이 따른다. 우리는 이 무거운 과정을 비로소 '산다'라고 부른다.


우리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당연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분류한다. 효율성을 위해 창의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창의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뇌의 본능적인 게으름에 저항하는 일이다. 창의성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눈높이의 문제'다. 세상을 이미 다 안다고 믿는 오만을 버리고, 내가 보는 풍경 속에 숨겨진 '고정된 점'이나 '보이지 않는 진동'을 찾으려 애쓰는 태도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기에 영원히 모르는 상태로 남는 것이다.


결국 창의적 인간이란 우연이라는 거친 파도 앞에서 기꺼이 돛을 올리는 항해사와 같다. 미래는 확률 분포로 존재할 뿐이지만, 나의 '행동'이 개입하는 순간 그 확률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수렴된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영원히 남의 이야기로 흐지부지 사라지지만, 내가 움직이면 미래는 비로소 나의 영토가 된다.


뉴턴의 사과와 베토벤의 진동은 우리 주변에도 늘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당연하다'는 이름으로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아주 작지만 다른 시선의 차이, 그리고 결과를 알 수 없음에도 내딛는 단 한 걸음의 행동. 그것이 우리를 일상의 매몰로부터 구원하고, 미래를 창조의 시간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움직이고 부딪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족 간의 대화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