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을 들여다보다

by Lohengrin

우주와 생명이라는 거대한 신비를 종이 한 장으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단연 ‘주기율표’ 일 것이다. 주기율표는 우주를 구성하는 레고 블록들의 명단이자, 만물의 근원을 원자번호와 화학적 특성에 따라 정렬한 우주의 지도다.


학창 시절 ‘수-헬-리-베’로 시작해 20번 칼슘까지 달달 외웠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인류가 현재까지 밝혀낸 118개의 원소 속에는 별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우리 몸속에서 흐르는 생명의 드라마가 모두 응축되어 있다.


이 118개의 원소 중 생명을 대표하는 주인공은 누구일까? 우주에서 가장 흔한 기호 1번 수소(H)일까, 아니면 우리가 한순간도 멈출 수 없는 호흡의 핵심인 산소(O)일까? 하지만 생명의 진정한 주인공은 ‘탄소(C)’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인류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혐오해 마지않는 ‘이산화탄소’ 속의 바로 그 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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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구성을 보면 수소가 약 74%, 헬륨이 약 24%를 차지한다. 별들의 고향인 우주에서 나머지 원소들은 단 2%에 불과한 ‘먼지’ 같은 존재들이다. 반면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지구 덩어리는 사뭇 다르다. 지구는 철(35%)이 가장 많고, 산소(30%), 규소(15%), 마그네슘(13%)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한 바위와 금속의 덩어리가 바로 지구인 셈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생명의 핵심이라는 탄소는 우주의 주류도, 지구 구성의 상위권도 아니다. 탄소는 지구 전체 질량으로 따지면 0.03%도 채 되지 않는 희귀한 존재다. 그렇다면 그 많지 않은 탄소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바로 ‘생명체’의 몸속으로 숨어들었다.


인간을 포함한 식물과 동물 생명체의 구성 원소를 살펴보면 산소(65%), 탄소(18.5%), 수소(9.5%), 질소(3.3%)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질량으로는 산소가 가장 무겁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탄소는 다른 원소 4개와 동시에 결합할 수 있는 독보적인 ‘연결성’을 가진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그리고 유전 정보를 담은 DNA까지, 생명의 모든 핵심 구조는 탄소를 뼈대로 삼아 만들어진다. 수소는 그 뼈대에 붙은 장식품이며, 산소는 에너지를 태우기 위해 잠시 머물다 떠나는 나그네일 뿐이다. 결국 ‘생명이란, 암석 속에 갇혀 있어야 할 탄소가 물을 붙잡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의 혐오는 대개 자기중심적인 오해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지금 탄소를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악마로 몰아세우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대기를 들여다보자. 지구 대기는 질소가 약 78%, 산소가 약 21%를 차지한다. 이산화탄소의 비중은 고작 0.04% 수준이다. 이 미세한 균형이 깨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 탄소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지구 생명의 역사는 곧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순환사였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탄소를 고정해 자신의 몸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산소를 내놓았다. 동물은 그 산소로 에너지를 얻고 다시 탄소를 내보낸다. 지금의 온난화 위기는 인류가 편의를 위해 지층 깊숙이 잠들어 있던 고대의 탄소를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끄집어내 대기 중으로 해방했기 때문에 발생한 ‘속도의 불균형’이다. 생명의 모태를 감옥으로 만든 것은 탄소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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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현상은 탄소와 수소와 산소의 전하가 결합하고 분리되며 벌이는 정교한 ‘율동’이다. 원소들이 만나 유기물을 형성하며 생명의 온기를 만들고, 때가 되면 다시 흩어져 기본 원소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원소는 또 다른 생명의 재료로 재활용된다. 46억 년 동안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원소들은 주인만 바뀐 채 끊임없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고결한 사랑이나 지독한 미움조차 결국 이 화학적 율동의 범주 안에 있다.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역시 탄소를 골격으로 한 화합물에 불과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증오하며 밤을 지새우는 감정의 소용돌이도 사실은 탄소와 산소, 수소의 결합 비율과 전기적 신호가 만들어낸 찰나의 현상인 셈이다.


이 거대한 우주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면, 누군가와 아웅다웅하며 마음을 끓이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깨닫게 된다. 내 몸을 이루는 탄소는 한때 누군가의 심장이었을 수도, 수만 년 전 이름 모를 들꽃의 줄기였을 수도 있다. 우리는 잠시 ‘생명’이라는 허울을 쓰고 우주의 원소들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무엇을 더 얻으려 그토록 애를 쓰는가.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원소의 순환일 뿐이다. 미움과 오해,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조차 생명이 움직이는 특이한 물리 현상의 일부다. '살아있다'는 것은 우주의 먼지들이 잠시 모여 지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기적 같은 상태다. 이 짧은 율동의 시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숭고한 목적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내 안의 탄소가 타인의 탄소를 알아보고, 서로의 생명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살피며, 이 푸른 행성에서의 시간을 아름답게 채워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주기율표라는 딱딱한 과학의 문장 끝에 우리가 적어 내려가야 할 삶의 마침표가 아닐까 한다.


오늘 아침, 내 몸속에서 조용히 율동하고 있을 탄소의 리듬에 귀를 기울여본다. 나는 살아있고, 당신도 살아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귓속에서 미약하지만 삐~~ 하고 들리는 소리는 생명의 소리일까 이명일까?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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