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하고 나서도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이 서너 개 있다. '매월 셋째 주 목요일'처럼 날짜가 정해진 모임도 있고, 매월 모여서 다음 달 모임 날짜가 정해지는 모임도 있다. 그중에서 하나인 모임이 지난주 목요일 있었다. 같은 직장,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선후배들이 함께 모이는 작은 소모임이다. 같이 근무하던 부서에서 퇴직한 사람들이 전부 모이는 '부서 OB'모임도 있지만, 연령대 범위가 너무 넓고 인원도 많아서 자주 모이기는 어려워 1년에 한두 차례 모이는 정도여서 그중에서도 근무기간이 겹쳐 위아래로 5년 정도 되는 선후배 8 명이 모여 만들어진 '소그룹'이다.
이 모임에서 연차로 따지면 내가 제일 후배이고 위로는 7년 차 선배님이 좌장이시다. 같은 회사를 다닐 때는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을 했지만 모두들 퇴직을 하고 나서는 각자 다른 회사, 다른 일들로 여전히 바쁘게 활동들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달 모이면 '정보 교환의 창구'가 된다.
사는 게 다들 그렇지만, 회사를 다니다 보면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라는 질문을 잘하지 못한다. 그런 질문을 할 시간도 없거니와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을 은퇴하고 나이가 60대를 넘기고 보면, 그제야 자신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아니 절박함일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어떻게 사는 게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이런 모임들이 소중해진다. 온갖 삶에 대한 지혜가 오고 가며 전수된다.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방법과 심지어 건강보조제로 유용한 것들에 대한 정보도 오고 가며 은퇴하면 재테크만큼 중요하다는 세테크에 대한 경험담도 상세히 들을 수 있다. 오고 가는 대화 수준이 대부분 그런 것이다. 이 모임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주제는 정치와 종교이야기다. 워낙 오랜 시간 같은 부서에서 선후배로 부대끼던 사람들이라 성향이 어떤지는 배우자 성격 보듯이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주 최대 정치 현안이었던 '윤석렬 사형'의 기쁜 소식조차 한마디 언급되지 않았다.
지난주 모임의 최대 화제는 건강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건강을 위해 먹고 있는 건강보조제에 대한 공유 및 추천이었다. 모임 멤버 중에 한 명이 치아 임플란트를 하느라 못 나온 게 이날 대화 주제의 도화선이 됐다. 나이 들면 다들 그렇지만, 몸에 이상신호를 보내오는 곳들이 한두 군데 있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다르니 건강보조제로 먹고 있는 약들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이 들면 보편적으로 안 좋아지는 신체부위가 있다. 치아 건강을 위한 보조제며 브레인 인지기능 유지를 위한 약들을 선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례를 들려준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나는 고혈압, 고지혈, 당뇨와 같은 만성 성인병 때문에 복용하는 약이 하나도 없다. 모두 경계 수치에서 간당간당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건강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에 좌장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질병 중에 암이 가장 행복한 질병이다"라는 주장이다. 언 듯 처음 듣기에는 무슨 궤변을 말씀하시나 했다. 그런데 뒷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으로 판명받는 순간은 청천벽력 같겠지만 자기를 정리할 시간을 알려주는 유일한 병이다. 관리를 잘해서 완치판정을 받아 새 삶을 살 수도 있고, 비록 완치가 어렵다고 해도 남은 삶의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열쇠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주장이다. 죽음의 불확실성 속에서 유일하게 계산 가능한 시간을 부여받았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존엄한 마무리를 위한 마지막 행운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치매와 같이 자기 존재를 점점 상실해 가는 부모 세대를 지켜보면서 가족과 주변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생생히 경험한 터라, 차라리 삶의 시간이 정해지는 편이 훨씬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렇게 다들 건강을 걱정하는 나이들이 된 모양이다. 당연하다. 나이 60세를 넘긴 은퇴세대이니 말이다. 갓 70세를 넘긴 좌장께서 "신체 회복력이 해가 바뀔 때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낄 정도'라고 하신다. 60대 중반만 해도 장거리 해외여행을 다녀와 시차적응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최근에는 일주일이 넘어도 시차적응이 안돼 밤에 말똥말똥하고 낮에 싸이나 먹은 닭처럼 깜박깜박 졸더라는 것이다. 나름 먹는 거 가려가며 식습관도 철저히 하고 운동도 매일 빠짐없이 하는데도 그렇단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받아들이고 그 나이때와 자기 근력에 맞는 운동을 맞춰서 해야 한다. 어쩔 것인가? 시간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데. 내가 거부한다고 운동하며 발악한다고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조금 늦출 뿐이다. 그 늦추는 시간 동안 병으로 아파 몸져눕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마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이미 답이 나와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부지런히 공부하는 일이다. 움직이는 동물이기에 부여받은 천형(天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