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서-따뜻하게 보듬다

by Lohengrin

나라와 민족에 따라 동일한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판이하다. 좁게는 한 국가 내에서도 산과 강, 바다가 만들어놓은 지리적 격리에 따라 지역마다 언어와 관습의 결이 달라진다. 이 격리된 환경 안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인간사의 이야기들은 사투리가 되고, 복식과 장신구가 되며, 식탁 위의 음식이 된다. 우리는 이것을 다양성 혹은 지방색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그 지역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하는 명징한 실체다.


"어제 먹은 음식이 오늘의 내 몸을 만든다"는 말처럼, 우리가 속한 자연과 환경은 서서히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 몸과 정신의 토대를 형성한다. 오랜 세월 고립과 정체를 반복하며 굳어진 이 정체성은 언뜻 불변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계절의 순환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며 독창적인 문화적 파동을 만들어낸다. 타자의 시선에는 기이하고 특이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그 땅의 정서와 감정을 지배하는 필연적인 질서가 숨어 있다.


일본 문화의 정수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다. 직역하면 '사물의 슬픔' 또는 '존재의 비애'를 뜻하는 이 단어는 일본 문학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전반에 흐르는 미의식을 대변한다. 이는 세상과 자연을 마주할 때 느끼는 찰나의 감동, 특히 계절이 바뀔 때 마주하는 무상함을 담담한 애수와 애절한 서정으로 치환하는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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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국보> 속 카부키 배우들의 고단한 삶이나, 정제된 다도(茶道), 그리고 덧없는 세상을 그려낸 우키요에(浮世絵)에는 '슬프지 않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는 특유의 심미적 기조가 깔려 있다. 일본을 여행하며 느끼는 특유의 정갈함과 고요함은 단순히 청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이러한 관조적 슬픔이 사회 전체의 분위기로 침잠해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국가 단위로 확장된 시각의 차이는 곧 국민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곧 다가올 봄의 전령, 벚꽃을 대하는 한국과 일본의 태도가 그 증거다. 한국인에게 벚꽃놀이의 정점은 단연 '만개(滿開)'의 순간이다. 꽃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났을 때 축제를 열고 그 생명력을 찬미한다. 우리에게 지는 꽃잎은 시들고 늙어 세월 저편으로 사라지는 '퇴화'와 '상실'의 이미지에 가깝다.


반면, 일본인들이 꼽는 벚꽃의 절정은 꽃잎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낙화(落花)'의 순간이다. 그들에게 화사함은 당연한 전제일 뿐, 진정한 의미는 그 화사함을 뒤로하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찰나의 행위에 부여된다. 이는 들끓는 냄비처럼 요동치기보다, 끓어오른 뒤 식어갈 때의 고요를 관조하는 그들의 정적 정서와 맞닿아 있다. 만개의 환희와 낙화의 애수, 이 극명한 시각 차이가 양국의 문화적 온도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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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차이를 예술적 기법으로 승화시킨 사례는 서양 미술사에서도 발견된다.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회화에서 유행한 '트로니(Tronie)' 기법이 그러하다. 대개의 초상화가 '이 모델이 누구인가'라는 실체적 진실에 집중한다면, 트로니를 구사한 화가들은 인물의 정체성보다는 화가 자신의 의도와 기법에 집중했다.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는 모델의 사회적 지위나 이름값에 매몰되지 않았다. 대신 강렬한 명암의 대비, 색채의 구성, 인물의 표정을 통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예술적 가치를 투영했다. 이는 초상화라는 보편적 틀을 깨고 화가의 시각이 주체가 된 사건이었다. 결국 예술이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지점을 포착해 내는 '시각의 전복'이며, 그 전복이 모여 하나의 사조를 형성하고 시대의 경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 된다.


예술가와 문인들이 보여주는 시각의 이동은 사회의 수준을 결정짓는다. 오늘날 전 세계가 열광하는 K-컬처의 전성기 역시 한국인 특유의 정서적 관점이 빛을 발한 결과다. 어제 '케이팝데몬헌터스'의 주제곡 '골든'이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부문을 수상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국인 정서의 기저에는 '따뜻함'과 '보듬음'이 있다. 상처 입은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누구나 다시 빛날 자격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공감의 미학이다. BTS가 노래하는 자기 사랑(Love Yourself)과 K-콘텐츠가 보여주는 인본주의적 서사는 차가운 기술의 시대에 전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실지호리 차이천리(失之毫釐 差以千里)"라 했다. 티끌만 한 시각의 차이가 결국 천리의 격차를 만든다. 문화라는 바퀴는 유행처럼 돌고 돌지만, 지금 그 중심축이 우리에게 와 있다면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독창적인 시각과 따뜻한 정서를 바탕으로 이 문화적 바퀴를 더 크고, 넓고, 길게 키워나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견뎌낼 우리 민족의 진정한 자산이자 버팀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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