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일반 대중식당에 가서 메뉴 주문을 위해 종업원을 부를 일이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식당 입구에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어 아예 주문을 하고 들어가거나, 테이블마다 주문형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어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아예 카드 결제까지도 하는 곳이 많습니다. 식사 중에 반찬이나 맥주 한 병을 요청할 때도 "여기요"나 "이모님"이라고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르는 것이 아니고 키오스크에 필요한 서비스 요청 메뉴가 들어있어, 요청사항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면 심지어 종업원이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고 이동형 로봇이 반찬이나 맥주를 싣고 테이블로 옵니다. 세상은 그렇게 인간미보다는 필요에 의한 사물화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변화의 흐름 속에도 사람 냄새가 나는 노포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노포의 홀에는 반드시 서비스하는 종업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이모'라고 부릅니다.
식당이든, 일반 물건을 파는 가계든, 전통시장 노점이든,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 근무하는 승무원에게 무언가 묻거나 서비스를 요청할 때 부르는 호칭이 애매하여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종업원과 눈이 마주치면 손을 들어 요청사항이 있다는 호출 사인을 보내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여기요"라고 외쳐 종업원을 오게 하는 방법을 씁니다. 장소에 따라, 또는 서비스하는 사람의 연령대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에, 성별 구분 없이 부를 수 있는 "여기요"라는 단어가 주로 쓰이는 듯합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종업원의 연령대가 지긋해 보이는 경우, 우리는 거리낌 없이 "이모님!"하고 호출합니다.
식당에서 이 '이모'의 정체는 뭘까요?
'이모(姨母 ; aunt)'는 "엄마의 자매를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입니다. 이 엄마의 언니나 여동생에 해당하는 단어를 식당 종업원의 호칭으로 사용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모'와 비슷한 '고모'도 있는데, '고모'라고 호칭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일까요? '고모'와 조카사이의 친밀도보다는 '이모'와 조카사이의 친밀도가 더 높아, '이모'가 친근함을 상징하는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회문화적 현상 해석을 들이대봐도, 그 친근함의 근원이 반드시 있다는 겁니다.
바로 '외갓집이 더 편한 것'은 유전적, 진화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답니다. 유전적으로 보면 '이모'는 엄마의 자매이므로 '나'와 혈연일 가능성은 100%입니다. 반면 '고모'는 생물학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남매이므로 유전적으로 혈연일 가능성이 100% 일 테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본능적인 의심입니다.
이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될 때 미토콘드리아 DNA는 난자를 통해서만 유전되므로 모계혈통을 추적하여 인류의 계통 기원을 밝히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정자에도 미토콘드리아 DNA가 있지만 정자 핵에 있는 것이 아니고 꼬리 쪽에 있어서 난자와 수정될 때 꼬리는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수정난에는 엄마의 미토콘드리아만 존재하게 됩니다.
즉 '이모'는 확실하게 엄마와 가장 유사한 사람입니다. 친근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가장 쉽게 투영할 수 있고 심리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적입니다. 유전적 연결이 혈연을 넘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입니다.
이 사례는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보러 면회를 오면 그 반응의 차이로써도 확연히 드러난답니다. 친정어머니가 아이와 첫 대면을 할 때, 먼발치에서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유리창 너머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친정어머니는 "어머 어머! 너무 귀여워! 아빠(엄마)랑 빼닮았구나!"라고 즉각 반응을 한답니다. 친정엄마의 입장에서는 내 딸이 난 자식이니, 내 유전자와 같을 확률이 100%이므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반면 시어머니는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나오는 순간, 바로 반응하기보다는 반응하는데 잠깐의 침묵이 먼저 온답니다. 아이가 내 아들과 닮았는지 확인하는 시간차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내 아들의 유전가가 아닐 가능성도 있기에 확인하는 시간차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아들과 닮은 구석을 찾아낸 후에라야 "에구에구! 어쩌면 이렇게 눈이 아빠랑 똑같아!"라고 반응을 한답니다. 그래서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랍니다. 잠깐의 머뭇거림이지만 그 편차를 느낄 정도라는 게 산부인과 의사를 하는 주변친구들의 전언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모'와 '고모'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포유류에 있어 '친자확인'은 이만큼 엄중합니다. 강한 수컷의 사회에서 알파 메일의 본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트리는 데 있습니다. 같은 암컷이 낳은 유전자가 다른 어린 개체를 무자비하게 물어 죽이는 동물의 세계를 실증적으로 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도구를 다루는 기술을 전수하거나 생존에 필요한 노하우나 재산 상속과 같은 루트는 거의 혈연으로 이어집니다.
'이모'와 외갓집이 편했던 이유를 유전학적 진화심리학으로 해석하면 그럴듯하지요? 그렇다고 '고모'들이 너무 속상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소통은 노력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자주 만나고 자주 전화하고 선물도 듬북 듬북 안겨주고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 '이모'이상으로 노력하면 '고모'도 '이모'못지않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가족과 친족 간의 용어를 전혀 관계없는 타인의 호칭으로 끌고 오는 한국 사회의 가족 동질성 관계 형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정(情)'이라는 따뜻한 단어가 한국 사회의 저변에 흐른다면 '이모'라는 단어도 그 따뜻함을 대변하는 용어가 아닐까 합니다. 모두가 내 가족입니다. 여러분 모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