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방 모임, 몇 개나 있으신지요?

by Lohengrin

살면서 몇 개의 모임을 유지하고 계십니까?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개수가 나의 '생활의 질'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의 연장으로든, 오랜 학연과 지연으로든, 취미로 모였든, 모임은 나의 일상을 규정하고 살아가는 활력의 동인이 되는 중요한 축으로 작동됩니다.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화의 단면 중에, 모임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임이 잘못 사용되면 '하나회'처럼 나라를 군홧발의 공포로 몰아넣기도 하고, 어쭙잖은 계몽령 내란을 일으켰다는 잔당들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런 얼치기들의 편협한 사고의 근원으로 모임이 작동하기보다는, 범인들의 사회에서는 그저 만나면 반갑고 즐겁고 하하 호호 잡담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형태로 존재합니다.


물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사교모임이나, 사회활동을 하는데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큰 사회조직에 회비를 내고 가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런 전략적이고 의례적인 모임은 제외하기로 합니다.

그냥 쉽게 카톡방에 만들어진 모임방에 내 이름이 들어간 것이 몇 개 정도 있는지 세어보는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호기롭게 모였다가 지금은 흐지부지 카톡방 이름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모임도 역시 제외해 보기로 합니다. 매달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1년에 분기별이나 반기별로 모이고 그 모임에 내가 반드시 참석했던 모임만 남겨 놓습니다.


또한 5명 이하의 소모임도 빼봅니다. 5명 이하의 인원이 모인 카톡방은 정말 친한 사람들이 모여 있거나, 특정한 때, 특정한 목적으로 잠시 만들어진 정보공유방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골프부킹하고 일정공유하는 그런 모임 말입니다. 제외합니다.


이렇게 카톡방에서 제외하고 빼고도 남은 모임의 숫자를 다시 세어봅니다. 몇 개 정도의 카톡방이 남아있습니까? 10개 정도 살아남아 있을까요?


사실 여러 카톡방에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사회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참여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경험하고 있어서 아시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모임의 정체성도 점점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에서 지워나간 카톡방의 면면을 보면 대충 짐작하실 겁니다. 카톡방 이름만 걸려있지 유명무실한 경우 말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 소식을 전하거나 일상을 공유하지 않아 먼지 앉고 거미줄 쳐진 폐가가 된 카톡방이 여럿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빠져나가기에는 다른 사람들 눈치 보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모임의 생명은 '참여'입니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가 됐든, 마음의 여러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뱉어내고 위로하는 통로가 됐든, 그렇게 일상과 정보와 위로가 공유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카톡방이 생명력이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요소입니다. 관심과 참여가 모임의 활성을 가져옵니다. 카톡방은 오프라인 모임을 하기 전에 분위기를 잡는 바람잡이의 역할입니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지지고 볶고 해 봐야 만나서 두 손 잡고 포옹 한번 하는 것만큼 교감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름을 올린 카톡방 모임의 숫자를 다시 세어봤습니다. 이런저런 모임을 제하고도 아직 15개 모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모임이 어제 마포에서 오프라인으로 있었습니다. 9명이 모인 모임인데, 모두들 사회 초년병 시절에 만났던 인연으로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40년 가까운 세월입니다. 기자와 항공사, 외국관광청 홍보담당자가 출입처 취재원 인연으로 모인 모임입니다. 지금은 모두 언론사 대표가 되어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저처럼 정년퇴직으로 귀촌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제는 이 모임 중 한 명이 해당 분야에서 큰 모임의 회장으로 추대되었다는 소식에,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멤버 9명 전체가 다 모이는 것도 코로나팬데믹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웃고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너무 크게 떠들어서 식당의 다른 손님들께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요즘 저녁식사 자리에서 술은 많이 안 마시는 분위기지만 어제 모임에서는 다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술잔에 계속 술이 채워집니다. 아쉬움을 달래느라 4월 초에 '정읍으로 프로젝트 귀촌'한 멤버의 집으로 1박 2일 내려가자고 일정을 잡았습니다.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의 인연이 이렇게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정(情)'일까요? 관심일까요? 배려일까요? 글쎄요. 저는 '내려 놈'인 듯합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봐왔고 시시콜콜 사정을 알기에 가리고 감출 게 없습니다. 개인적 약점이 개인적 위축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공유되어 나의 치부로 보듬어야 하는 환부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관계인데 그렇게 서로 묘한 끈끈함으로 모입니다.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포진해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 덕분에 무난히 사회생활의 험한 파고를 넘어왔습니다. 이런 모임들이 삶을 사는 중간중간, 쉬어가는 쉼터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의 오늘을 있게 한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 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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