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입을 열어 후회하는 일이 입을 닫아 후회하는 일보다 압도적으로 많음을 깨닫는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보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口禍之門)"이라는 경구가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은 불필요한 언어의 배설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인류의 지혜가 담긴 고전들은 일제히 '침묵'을 예찬한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제 디누아르는 저서 '침묵의 기술'에서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말을 해야 할 때가 따로 있듯이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닫는 것이 덜 위험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침묵은 이따금 편협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무지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대신하기도 한다"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처럼, 적절한 때에 입을 닫는 것은 경솔함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다. 침묵은 때로 편협한 이에게는 지혜의 가면을, 무지한 이에게는 능력의 아우라를 씌워주기도 한다. 현대의 연예인이나 사회 명망가들이 '신비주의'라는 이름의 침묵을 통해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전략을 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침묵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에너지이며,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더 웅변적이다.
그러나 침묵이 언제나 황금은 아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은 명확히 짚었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도 그르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도 그르다.(當語而嘿者 非也 當嘿而語者 非也 당어이묵자 비야 당묵이어자 비야) " 반드시 말해야 할 때 입을 닫고 있는 상태를 일컬어 '금약한선(噤若寒蟬)', 즉 추운 겨울의 매미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형국이라 했다.
침묵은 종종 책임 회피의 수단이 되거나, 비겁한 동조의 도구로 전락한다. 특히 권력관계에서 대중의 침묵은 위험하다. 2015년 개봉됐던 '내부자들'이라는 영화에 상징적인 대사가 있다. 영화 '내부자들'은 정치인과 언론, 재벌들이 얽히고설킨 배신과 음모를 다룬 영화다. 이병현, 조승우, 이경영, 백윤식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 영화에 언론사 논설주간으로 나오는 백윤식의 대사 중에 압권이 있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거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는 대사는 침묵하는 대중을 향한 권력자의 오만한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부당함 앞에 침묵할 때, 그 침묵은 상대에게 '동의' 혹은 '굴복'으로 해석되며, 결국 우리 자신의 권리를 갉아먹는 칼날로 돌아온다.
일상의 영역, 특히 부부나 연인 관계에서 침묵은 더 큰 파열음을 낸다. 흔히 부부싸움 중 "말해봐야 싸움만 커지니 입을 닫자"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판인 경우가 많다. 감정을 배제한 채 나의 상태를 전달하는 '말'이 생략될 때, 상대는 침묵을 '무시'나 '단절'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뇌는 불확실한 상황을 위협으로 간주한다. 상대방이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않는 침묵의 상태에 놓이면, 뇌는 편도체를 활성화하며 온갖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써 내려간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나?", "뭔가 숨기는 게 있나?" 하는 의구심은 신뢰를 파괴한다. 썸을 타는 청춘들의 밀당이나 비즈니스 파트너 간의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언어적 피드백이 없는 침묵은 협업의 의지가 없거나 정직하지 않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결국 관계의 종말을 초래한다.
결국 핵심은 '타이밍'과 '장소'다. 말과 침묵 중 무엇이 더 우월한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의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 것과 같다. 사고를 막으려면 브레이크(침묵)가 필요하지만,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가속 페달(말)을 밟아야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말은 자신의 존재 증명이자 타인과의 연결고리다. 내가 필요할 때 정확히 요구하고, 상대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이다. 말을 해서 생기는 위험보다, 말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불확실성의 대가'가 더 클 때가 많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침묵은 나를 보호하는 요새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인을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침묵의 깊이를 알되, 말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용기와, 해야 할 말을 참아내는 절제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군자'의 경지에 다가설 수 있다.
인간관계라는 복잡계에서 말과 침묵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이 두 가지 무기를 상황에 맞춰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하는 기술이야말로, 우리가 평생을 바쳐 공부해야 할 인생의 가장 난해한 물리 법칙이자 예술이다. 오늘 내가 닫은 입이 비겁함은 아니었는지, 오늘 내가 연 입이 경솔함은 아니었는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자문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