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 희박한 가능성에 대하여

by Lohengrin

만약(萬若 ; if)은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를 뜻하는 한자어다. 한자식 풀이를 하면 "만 가지 경우 중 혹시 그와 같은 일이 생긴다면"이라는 확률론적 단어다. 비슷한 뜻을 가진 '만일(萬一)이라는 단어도 있다. 만일은 '만 가지 경우 중 하나'라는 뜻으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가정을 할 때 쓰인다. 인간이 감히 예측할 수 없는, 0.01%라는 지극히 낮은 확률의 영역을 '만약'이라는 두 글자에 담아내고 있다.


'만약'은 단순히 문장을 연결하는 부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건의 발생 빈도에만 집중하는 전통적인 빈도주의(Frequentist)를 넘어선다. 오히려 새로운 정보가 유입될 때마다 기존의 믿음을 수정하고 업데이트해 나가는 베이지안 추론(Bayesian Inference)의 정수에 가깝다. 우리는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통해 과거의 데이터를 재해석하고,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현재의 판단 기준을 끊임없이 보정해 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우리를 괴롭혔던 영어 문법의 가정법과 시제 일치, 혹은 컴퓨터 코딩의 if 구문은 '만약'을 차가운 논리의 틀 속에 가둔다.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if는 참과 거짓을 나누는 냉정한 갈림길이다. 피지컬 AI 시대의 모든 플랫폼과 지능형 기기들이 해답을 내놓는 기저에는 반드시 이 if 연산자가 존재한다. 만약 입력값이 A라면 B라는 결괏값을 출력하라는 명령, 그 톱니바퀴 같은 논리가 세상을 움직인다.

그러나 '만약'이라는 단어가 컴퓨터 알고리즘의 기능적 범위를 훨씬 상회하는 사고의 확장 도구임을 깨닫게 된다. 하수의 언어에서 '만약'은 단순한 가정에 그치지만, 고수의 언어에서 그것은 사건의 전개를 뒤집어 삶을 재구성하는 결정적 연결점이다. '만약'이라는 마법의 단어를 소환하는 순간, 이미 고정된 과거의 사실은 수많은 변수가 살아 움직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시장으로 바뀐다. 그것은 후회라는 감정을 원료로 삼아 미래의 가능성을 정제해 내는 일종의 '사고 실험'이다.


최근 극장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만약에 우리'는 이 단어가 가진 감성적 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0여 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연인의 재회를 다룬다. 영화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만약에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만약에 네가 내 곁에 남았다면"이라는 가정을 쏟아낸다. 이들의 대사에 섞인 '만약'에는 아쉬움과 미련, 애틋한 소회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의 끝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잊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젊은이들의 몸부림에 가깝다. 여기서 '만약'은 과거를 부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아픈 추억을 간직한 채 서로의 삶을 응원해 줄 수 있는 '좋은 이별'로 나아가게 하는 치유제 역할을 한다. 알고리즘 속의 if는 오류를 걸러내지만, 삶 속의 '만약'은 상처를 어루만진다.


우리 뇌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시나리오를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닥쳐올 위험에 대비하고 정서적 충격을 완화한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도 인간의 냄새가 나는 문장 속 '만약'이 주는 울림을 대체할 수는 없다. 차가운 if 연산자가 내뱉는 결괏값보다는, "만약에 말이야..."로 시작되는 서툴고 다정한 목소리가 우리를 더 깊이 위로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무수한 변수로 가득 차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느끼는 불안이나, 디지털 격차 앞에서 작아지는 대중들의 두려움 또한 "만약 내가 뒤처지면 어쩌지?"라는 부정적인 가정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단어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지금 이 기술을 배운다면", "만약 내가 오늘 이 짧은 글을 쓴다면"이라는 긍정적인 베이지안 업데이트를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은 삶의 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문을 만들어내는 전환점이다. 과거의 사실에 '만약'을 대입해 상상력의 영토를 넓히고, 그 안에서 소중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비결일 것이다. 오늘, 내 마음속에는 어떤 '만약'이 자라나고 있는가. '만약'이 책임을 회피하는 핑계의 수단, 부러움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단어가 좌절을 보듬는 치유제이자, 내일을 여는 논리 연산자가 되어야 한다. 단어의 쓰임새는 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새 장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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