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설 명절인데,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설 쇠러 고향에 내려가셨나요? 전 부치며 차례상 준비는 잘하고 계시고요? 온 집안에 기름냄새 진동을 하나요? 남자들은 거실에서 소주나 마시고 있다고요?
설과 추석과 같은 명절은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큰 집안 행사입니다. 가족들의 생일이나 결혼식 같은 때도 모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명절 연휴처럼 보통 3일씩 쉴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물론 문화적 배경이 깔려 있긴 하지만 가족 정체성과 민족 공동체 유지를 위해, 명절은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은 틀림없습니다.
오늘 아침뉴스에 중국도 춘절 연휴를 맞아 95억 명이 이동을 하는데 고속도로가 막혀 도로에서 쌀 씻어 밥 해 먹고 공놀이하는 진풍경을 보여줍니다. 중국도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명절을 맞아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기꺼이 고생을 감수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 모습이 지나간 시간은 한 세대 정도밖에 안 됩니다. 지금도 서울서 부산까지 차로 고속도로로 가면 소요되는 시간이 7시간이니 8시간이니, 어느 시간대에 출발하면 조금 덜 붐빌 것 같다는 예측성 기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고향이 강원도 원주인데, 대학 진학을 하고 줄곧 서울에 있었던 관계로 설과 추석 때는 반드시 내려갔습니다. 결혼을 하고 어머님을 아예 서울로 모시고 온 1993년 전까지 말입니다. 83학번이니 10년 세월을 그렇게 명절마다 고향을 내려갔네요. 지금이야 집집마다 다들 자가용이 있지만 80년대만 해도 차가 있어 고향을 간다는 것은 금의환향하는 거와 같았습니다. 대부분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예매 전쟁입니다. 사전 예매일이 정해져 있어 전날부터 매표소 앞에서 밤을 새우며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고향 내려가는 표를 못 구하면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입석으로라도 타고 갔고, 이조차도 안되면 터미널 근처에서 승합차로 불법영업을 하는 차량에 웃돈을 주고 끼여 가기도 했습니다.
고향이 뭐고 부모의 연이 뭔지, 그런 개고생을 해가며 내려갔을까요? 지금은 "그럴 때도 있었지"라는 '나 때의 전설'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귀향길이 힘들다는 생각을 미쳐해보지 못한 듯합니다. 당연히 내려가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일 겁니다. 가족은 그런 것이고 고향은 그런 곳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최근 5년 전부터, 명절이 잊혀가는 이벤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고향에 안 내려간 지는 어언 30년이 넘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1주기 때까지 제사를 모시고, 모든 제사와 차례상 차리는 것을 하지 말자고 선언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는 집안의 최고 어르신이라 일가친척들도 명절 세배를 오고 해서 음식 준비도 하고 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집에 찾아오는 명절 손님도 발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겸사겸사 그동안 하던 제사 및 명절 차례상을 모두 없애기로 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는 절대 아닙니다. 저는 종교가 기천불인 관계로 교회 가면 기도하고 사찰에 가면 절하고 성당 가면 묵상합니다.
그래도 그동안은 설과 추석 차례상에는 증조부와 증조모 지방까지 매번 써서 모시고 차례가 끝나면 지방을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내곤 했습니다. 나름 뼈대 있는 집안의 가풍을 품위 유지하느라 지켜왔습니다만, 제사상과 차례상은 죽은 자들의 위로라기보다는 산 자들의 위안이라는 생각 때문에 없앴습니다. 조상께는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으나 삶과 죽음에 대해 정의 내리기에 따라 생각이 다르니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명절때되면 전과 동그랑땡을 부치고 밤도 깎고 설에는 만두 빚고 추석에는 송편 빚던 분주함은 사라졌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명절 때면 동그랑땡, 육전꽂이, 동태 전, 녹두전, 두부구이 만드는 것이 제 담당이었고 만두와 송편을 예쁘게 만드는 나름 손재주도 있습니다. 차례상 준비하면 이것저것 할 것이 너무 많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일손 보태는 일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차례상 차리는 것을 없애고 나니 썰렁하고 한가해지긴 했습니다. 그나마 명절인데 집에 기름냄새 정도는 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세 식구 먹을 동태 전 몇 개 만들고 설날 아침 먹을 떡국 정도 준비는 하자고 했습니다. 만두도 몇 개 안 되니 그냥 시장에 가서 떡국떡 살 때 함께 사 오고 맙니다. 그렇게 "그래 오늘이 설이구나"정도로 보내는 듯합니다. 큰 딸아이가 결혼해서 사위도 생겨 식구가 늘긴 했는데, 직업이 승무원인 관계로 명절이면 비행 편이 늘어서 더 바쁩니다. 명절을 집에서 같이 보낸 때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명절이라고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차례상도 없앤 것입니다. 차례상에 떡국 차려놓고 혼자 절하는 것도 맹숭맹숭하고 어색한 듯해서입니다. 대신 설 세배는, 유일하게 집안 어르신으로 계신 장모님 댁에 설날 저녁에 가서 처가식구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합니다. 처가 식구는 6남매라 그래도 모이면 시끌벅적합니다.
조용한 가운데 차분한 까치설날입니다. 우리 설날인 내일은 조금 설레게 될까요? 조카들에게 주던 세뱃돈도 이젠 다들 직장을 다니고 해서 주머니가 굳긴 했습니다. 이젠 자식들이 세배하고 용돈도 주는 시대로 흘러들어와 있네요. 설빔이라고 새 양말이라도 얻어 신고 동네 어르신들께 세배하러 다니며 받은 세뱃돈으로 영화 보러 가던 시절이 은근히 그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