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아점 겸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잠시 리모컨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집에 스마트 샛톱박스를 설치하면 TV채널이 쇼핑채널을 포함하여 백여 개는 되는 듯합니다. 심지어 네플릭스와 유튜브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채널이 너무 많다 보니, 자주 보는 채널은 번호까지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리모컨으로 채널 넘기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가끔은 어제처럼 "다른 채널에서는 어떤 콘텐츠들을 보여주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해서 무장적 앞으로 가기 버튼을 눌러볼 때가 있습니다.
어제,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가기 리모컨 버튼을 누르고 있다가 걸려든 채널이 하나 있습니다. OBS라는 채널입니다. 평소에는 보지 않는 채널입니다만, 화면 오른쪽 귀퉁이에 보이는 자막 제목 때문에 리모컨을 누르는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제목이 가족휴먼다큐 "나 죽거든" '생전 장례식'입니다. 명절 연휴라 방송사에서 기획하여 방송하는 듯했습니다. (방송 후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미 1월에 4회에 걸쳐 MBCNET에서 방송한 것 중에서 마지막 편을 어제 다른 방송사에서 재방송한 것을 봤더군요 ㅠㅠ)
"생전 장례식? 뭐야 산채로 묻었다는 무시무시한 호러물이야?"
화면을 보건대 그건 아닌 것 같고 일단 잠시 지켜보기로 합니다.
채널서핑하다 우연히 걸려든 화면이라, 스토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도 모릅니다만, 제가 보기 시작한 장면은 주인공인 78세 할머니가 '생전 장례식' 초대장을 쓰고 가족들에게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서 읽어보는 대목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전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 장면만으로도 채널을 쉽게 돌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요즘 70대 후반은 요양원에서 막내 취급도 못 받을 정도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많이 높아져 있습니다. 화면 속 주인공 할머니께서도 아주 건강하신 모습입니다. 저 정도 건강을 유지하고 계셔야 '생전 장례식'도 기획을 할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목 만으로도 대충 스토리 전개가 예상되시지요? 평생을 슈퍼우먼으로 살아오신 섬마을 할머니가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대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을 불러 모아 가족파티를 하며, 살아있을 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자식 사 남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써서 평소에 갖고 있던 소소한 그리움과 아쉬움, 사랑을 전합니다. '생전 장례식'이라는 단어는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겠다는 은유적 표현이었습니다. 감정의 가장 근원을 들춰내서 보여줘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부끄럽지도 않은 그런 순간입니다.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주려고 편지를 쓰고 한번 읽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눈물이 울컥합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드라마 보면서도 가끔 울컥울컥 가슴이 메어오고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갱년기일까요? 갱년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온 듯 하지만 이렇게 눈물이 많아진 때를 갱년기라고 한다지요?
스티브잡스는 17살 때부터 유언장을 매년 썼다고 합니다. 삶의 마지막 날을 살듯이 오늘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는 오늘을 사는데 우리는 그 소중함을 무심코 지나치고 있습니다. 당연한 듯이 받아들입니다. 이 당연함이 무심함을 낳았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화면 하나에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고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나에게 어떤 시간일까요? 다시 한번 물어보게 됩니다.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