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녀석이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 나름 가고 싶어 하는 직종이 있어 한 우물만 파고 있는듯한데 잘 안되고 있는 모양이다. 벌써 두세 차례 면접에서 떨어졌다. 이제 사회에 나가기 위한 시작인데 의기소침해할까 봐 취업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뭐해서 그냥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2차 면접까지 합격해서 마지막 임원 면접만 남겨놓은 상황이라 내심 조심스럽기는 한데 본인은 합격해 놓고도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꼭 대학입학 전형에 합격해 놓고 학교와 학과가 마음에 안 들어 재수할까 고민하는 형국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첫 직장이 평생의 직업을 좌우할 수 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다. 그래서 고민하게 되고 선 듯 선택을 못하게 된다. 신중함이 필요하고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사회에 진출하고자 하는 대학졸업자들의 근심거리를 보태는 사회현상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어 초조함을 더하고 있는 게 요즘 현실이다. 특히 생성형인공지능 AI의 등장으로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여론몰이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지난해 말에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젊은이들이 실무 수습처를 구하지 못해, 선발 인원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전문직으로 인식되는 법률 변호사 업계에도 밀어닥쳤다. 법률 서비스 AI가 저연차 변호사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시니어 변호사 1명이 법률 서비스 생성형 AI를 쓰면 저연차 변호사 2-3명과 같이 일하는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이 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대졸공채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예전에는 보통 대기업들이 하반기 대학 졸업 예정자들을 채용하기 위해 10월 말이나 11월 정도에 한꺼번에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하고 거의 동시에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가고 싶은 대기업들이 같은 주말에 시험을 치를 경우, 한 곳을 포기하고 좀 더 선호하는 기업의 시험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지금은 '대한 늬우스'에서나 볼 수 있는 풍광이 되어 버렸다.
대졸 공채는 범용 인재를 뽑아 기업에서 다시 재교육을 해서 '우리 회사 인재'로 키우는 방식인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연수원이나 교육원에서 적어도 한 달에서 세 달 정도 집체교육을 받고 일손이 필요한 부서로 신입사원 발령을 내, 본격적으로 실무를 하게 하는 구조다. 마치 군대 신병 훈련소에서 여러 기본군사 교육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는 것과 같다. 이렇게 공개채용을 통한 동시다발적 신입사원 채용을 하면, 동기애와 애사심을 고취시켜 '회사의 전사'로 키우고 기업문화라는 조직의 유전자를 계승하기에는 아주 유용했다. 그래서 회사원들을 보면 어느 기업 소속의 사람인지 대강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바뀌어 채용방식도 완전히 변해 수시, 경력 채용으로 바뀌었다. 대기업의 경우, 공개 채용을 공고하고 면접을 진행하고 뽑는 과정에 많게는 수천 명이 지원한다. 지원자가 많으면 그만큼 좋은 인재들도 많을 테지만 기업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과 인력 투입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관련 분야의 역량을 가진 인재들을 즉시 채용하여 업무에 투입하는 수시, 경력 채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 AI가 진화하면서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자, 신입사원의 필요성조차 줄어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 과정 속에 간과하고 있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기업은 무기질의 기계 장치가 아니라, 사람으로 구성된 유기체다. 세포가 끊임없이 재생되어야 생명체가 유지되듯, 기업 역시 말단 사원부터 임원까지 이어지는 인적 계보가 살아있어야 지속 가능하다.
지금 당장은 AI가 신입사원보다 저렴하고 빠를지 모른다. 하지만 AI는 '조직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며, 미래의 의사결정자로 성장하지도 않는다. 신입 채용을 중단하는 것은 유기체의 '생식 기능'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젊은 인재를 육성하지 않는 조직은 결국 노쇠해질 것이며, AI가 채울 수 없는 '인간적인 통찰'과 '창의적 도약'의 맥이 끊기게 될 것이다. AI가 아무리 진화해도 기업의 진정한 동력은 여전히 그 조직을 지탱하는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취업 시장은 전형적인 '레몬시장'이다. 기업은 "쓸 만한 사람이 없다"라고 아우성이고, 구직자는 "갈 곳이 없다"라고 절규한다. 요즘 대학 졸업생들의 스펙은 우리 세대의 상상을 초월한다. 50~60대가 지금의 청년들과 경쟁한다면 아마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기 힘들 것이다. 이토록 우수한 인재들이 왜 문밖을 서성여야 하는가.
이는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교육과 채용 시스템이 따라잡지 못한 탓이다. 기술은 효율을 높이는 도구일 뿐, 사회를 지탱하는 목적이 될 수 없다. 기업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의 유혹을 뿌리치고, 미래의 리더를 키워낸다는 책임감으로 신입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청년들 또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를 구축하며 레몬시장바구니에서 벗어나는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명심보감 성심 편에 '의인막용 용인물의(疑人莫用 用人勿疑)'라고 했다. 사람을 의심하면 쓰지 말고, 썼다면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에 나갈 용기이며, 기업에 필요한 것은 미숙한 청년들을 믿고 기회를 주는 관용이다.
효율이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사람'의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조직이 건강하게 숨 쉬고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철칙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