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프로그램이나 게임 제작자가 고의로 숨겨 놓은 재미있는 기능이나 메시지를 일컬어 '이스터 에그(Easter Egg)'라고 합니다. 본래 부활절 달걀 바구니 속에 가짜 달걀을 섞어 두어 찾는 재미를 주었던 관습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오늘날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어, 사용자의 특정 동작이 반복될 때 갑자기 나타나는 기괴한 문구나 제작자의 약력, 때로는 조롱 섞인 익살까지 그 형태도 다양합니다.
요즘은 이스터 에그가 영화, 음악, 책 등 각종 미디어에서 제작자가 오마주나 패러디의 형식으로 심어둔 상징물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비록 치밀하게 설계된 이 암호들이 전체 스토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이를 발견하는 순간 관객은 제작자와 비밀스러운 연결 고리로 이어지는 흥분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창조한 작품에 위트와 자부심, 그리고 특유의 유머와 해학을 담아내곤 합니다. 이를 알아채는 관객의 시선을 두고 우리는 흔히 '심미안이 있다'라고 평가합니다. 물론 이는 비평가들의 사후적 해석일 수도 있으나, 작가가 의도적으로 남긴 흔적을 찾아내는 과정은 예술 감상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는 특별한 경험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이스터 에그를 소재로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댄 브라운의 추리소설이자 영화로도 제작된 '다빈치 코드'를 들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은 작품 곳곳에 숨겨진 장치들로 증명되곤 합니다. 실제로 '모나리자'를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모델의 오른쪽 눈동자 안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약자인 'LV'가 미세하게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또한 '최후의 만찬' 속 식탁 위에 놓인 빵과 제자들의 손 위치를 악보의 오선지처럼 연결하면 약 40초 분량의 엄숙한 레퀴엠이 완성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합니다. 이는 다빈치가 단순한 화가를 넘어 음악과 수학에도 정통했음을 보여주는 은밀한 자부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의 또 다른 거장 미켈란젤로 역시 자신의 작품 속에 수많은 상징과 해부학적 코드를 숨겨두었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백미인 '아담의 창조'를 살펴보면, 하나님과 천사들을 둘러싼 붉은 망토의 형상이 놀라울 정도로 인간의 뇌 단면과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신성한 지혜가 인간의 뇌를 통해 전달된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았거나, 당시 금기시되었던 해부학적 지식을 교회의 심장부에서 은밀히 과시하고자 했던 작가의 대담한 의도로 해석됩니다. '최후의 심판' 벽화에서는 성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인간의 가죽 껍질에 미켈란젤로 본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또한, 24세의 젊은 나이에 완성한 '피에타'가 본인의 작품임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밤중에 몰래 성당에 들어가 성모 마리아의 어깨띠에 자신의 이름을 선명히 새겨 넣었다는 일화는 예술가의 치기 어린 자부심이 빚어낸 가장 유명한 이스터 에그 중 하나입니다.
이스터 에그는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물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교 건물의 화려한 파사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곳의 기념품 상점에는 유독 개구리 관련 제품이 많은데, 이는 복잡한 조각상들 중 해골의 머리 위에 아주 작게 조각된 개구리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개구리를 찾아내면 '행운이 온다'거나 '시험에 합격한다'는 속설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이 고개를 쳐들고 개구리 찾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과거 석공이 남긴 작은 위트 하나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 강력한 마케팅 자산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승화된 전형적인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사찰과 궁궐에서도 조상들의 해학과 유머를 여러 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불국사 대웅전 처마 밑 공포에는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의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나부상' 역시 흥미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대웅전을 짓던 도편수가 주막 여인에게 전 재산을 맡겼으나 그녀가 돈을 가지고 도망가자, 배신감에 찬 도편수가 여인의 벌거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무거운 처마를 영원히 받치게 함으로써 복수와 참회를 동시에 표현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나부상은 사람의 형상이라기보다 원숭이 형상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말입니다.
엄숙하고 근엄할 것만 같은 경복궁 내부에도 이와 같은 해학과 유머가 가미된 여러 석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흥례문을 지나 근정문 사이 영제교를 건너다보면 물길을 향해 익살스럽게 혓바닥을 '날름' 내밀고 있는 서수를 만날 수 있으며, 근정전 월대 모퉁이에는 해치 부부 사이에서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 해치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석물들은 자칫 경직될 수 있는 궁궐의 분위기에 인간적인 온기와 여유를 불어넣어 줍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 위트와 해학, 유머 그리고 자신의 기술적 숙련도에 대한 자부심을 은밀히 심어왔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감추어져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하며, 작가의 숨은 의도를 눈치챈다는 것은 관객에게 있어 가장 짜릿한 감상 포인트가 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예술가들이 도달한 이 경지는 거장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본래의 기획 의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발견하는 이로 하여금 빙그레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스터 에그는 예술가가 후대에 건네는 시대를 초월한 대화 신청과도 같습니다. 굳이 없어도 작품의 가치는 변함없겠지만, 있기에 더욱 인간적이고 풍요로운 예술의 세계. 우리는 그 숨바꼭질 같은 흔적 속에서 작가의 숨결과 인간미를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