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 봄바람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장항준 감독이 만든 '왕과 사는 남자'영화가 개봉 한 달도 안돼 600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단다. 잘 만든 영화는 관객이 알아보는 법이다. 물론 유해진, 유지태 등 출연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가 영화를 이끌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죄송하게도 저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꼭 영화관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 덕분에 스토리의 배경이 되는 영월 청령포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하고 심지어 단종의 왕비였던 정순왕후가 묻힌 경기도 남양주 진건읍의 사릉(思陵)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단다. 영화 한 편이 지역 경제에까지 긍정적 효과를 주고 있으니 문화 콘텐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흥행을 보면서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영화를 역사로 이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다큐멘터리와 상상의 소설을 헷갈려할 정도의 관객 수준이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은, 영화가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더 강하기에,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영화의 모티브로 하는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들은 항상,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자막을 띄운다.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했을 뿐 내용은 상상이 가미되었다"는 디스크레이머(disclaimer)다. 영화 속 인물의 이름만 같을 뿐 스토리 전개는 창작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예전 '개그콘서트'가 인기가 많던 시절, 정치인들의 행태를 개그 소재로 다루다 비난이 쏟아지자, "상상은 상상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고 아예 개그맨들이 무대에서 대사를 하던 때가 있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인물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그 역할을 하는 주연배우들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역사적 평가에 오해를 더하지 않기 위한 고심이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 안고 있는 무게라 할 수 있다.
사극이 갖고 있는 역사적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선을 망국으로 가게 만든 대표적 인물을 '조선의 국모'로 미화시켜 역사를 왜곡한 대표적 사례다. 창작물이 사실을 변형시켜 진실로 둔갑한 현장이다. 역사는 감성으로 보는 게 아니고 이성으로 읽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창작극의 망령은 아직도 문화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 창작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가 지난 연말부터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 뮤지컬은 이상훈 작가의 '한복 입은 남자'라는 장편소설을 각색한 것인데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라는 그림이 핵심 모티브다. 그런데 이 루벤스가 그린 드로잉 소묘화 '한복 입은 남자'는 조선인이 아닌 명나라 상인 흥포(興浦 ; yippong)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10년이 넘었다.
루벤스의 그림에 '한복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상상에 상상이 더해진 추측'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이 그림은 1983년 미국 LA의 폴 게티 박물관이 소장 중이던 것을 크리스티 경매장에 내놓을 때 그림 속 인물의 복장이 한복과 흡사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붙여졌다. 그 이후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오세영 작가의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끌려간 노예들이 유럽까지 건너갔을 것이라는 추정까지 보태지고 17세기 실존 조선인으로 기록된 안토니오 꼬레아가 모델일 거라는 추론으로까지 발전하는 촌극이 발생했던 것이다.
상상과 추론과 소설이 진실은 될지언정 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보려는 끊임없는 성찰만이 사실을 드러내는 촛불이 된다. 직시. 제대로 봐야 한다. 특히 지나간 역사를 보는 눈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