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기에 입을 옷이 없다

by Lohengrin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났으니 이제 완연한 봄이라고 이야기해도 되겠지요? 지난 주말 꽃샘추위로 아침 기온이 영하권으로 잠시 내려가긴 했지만, 낮 기온은 10도 안팎으로 올라 바깥 활동을 하기에 적당히 선선한 날씨였습니다. 물론 이는 서울에 사는 사람의 관점일 뿐입니다. 지난 주말, 산등성이가 여전히 하얀 치악산의 풍광을 전해온 고향 친구에게는 아직 봄이 멀리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실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큰 시기를 환절기라 하며, 이맘때 어르신들의 부고 소식이 빈번해지기도 합니다. 급격한 온도 변화는 신체 적응력이 떨어진 분들의 면역력을 저하시켜 건강 상태를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어르신이 계신다면 어느 때보다 세심한 관찰과 주의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젊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옷 입기가 참 만만치 않습니다. 두꺼운 코트나 패딩을 걸치기에는 계절에 뒤처진 듯하고, 그렇다고 얇은 옷으로 갈아입었다가는 아침저녁으로 개 떨듯이 떨어야 합니다. 이렇듯 애매한 날씨 탓에 옷장을 열고 한참을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이런 간절기에 입을 옷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저에게 국한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보통 간절기 옷을 사는 데는 인색해지기 마련입니다. 사봐야 서너 번 입고 옷장으로 들어갈 것이 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차라리 한 달여를 그냥 두꺼운 외투로 버티며, "더우면 벗어서 들고 다니지 뭐" 하는 심사가 작동하곤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남성의 옷차림이 다소 칙칙하고 검은색 일색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이제 패딩을 입기에는 어색한 기온임은 분명합니다. 슬슬 겨울옷을 정리하여 세탁소로 보낼 타이밍이 온 것입니다. 아직 2-3주는 더 버텨야 한다고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합니다.


사실 기온에 맞는 옷차림은 "빨리 입고 늦게 벗어라"라는 말이 정답일 수 있습니다. 이는 항온동물의 숙명 때문입니다. 더운 것도 문제지만 추운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체온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더울 때는 벗으면 그만이지만, 추울 때는 껴입거나 몸을 움직여 열을 내야 합니다. 추울 때 몸을 떠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체온을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실제로 섭취하는 에너지의 60% 이상이 체온 유지를 위한 기초대사에 쓰입니다. 따라서 옷을 잘 입는 것은 단순히 패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빨리 입고 늦게 벗는 것"의 핵심은 결국 추위에 대한 저항력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추위와 외투의 관계는 식당의 코트룸 공간과도 연결됩니다. 호텔 연회장이나 고급 레스토랑은 외투를 보관해 주는 코트룸을 별도로 마련해 둡니다. 격식 있는 만찬 자리에서 의자 뒤에 걸쳐놓은 외투는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간이 여의치 않은 대중식당의 경우, 의자 밑에 외투나 소지품을 보관하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특히 고기를 굽는 식당은 옷에 냄새가 밸 수밖에 없어 커다란 비닐봉지를 제공하곤 하는데, 의자 밑 공간을 활용해 냄새를 차단하는 방식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이처럼 외식 문화와 식당의 구조까지 변화시킵니다.


자연의 순환이 무한 루프처럼 연결되어 있듯, 날씨와 기온, 옷차림과 패션, 그리고 식당의 공간 배치까지도 모두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간절기 옷을 사지 않고 버티는 행동은 어쩌면 이 순환 과정에서 '잃어버린 고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아웃렛이나 백화점에 들러 이 시기에 입을 수 있는 옷들을 둘러봐야겠습니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말도 있지만, '얼죽패(얼어 죽어도 패션)' 또한 놓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꼭 멋쟁이가 아니더라도 옷차림은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입니다. 옷차림은 계절을 앞서가기보다 약간 뒤처져 따라가는 것이 안전하긴 하지만, 계절의 속도에 맞출 줄 아는 최소한의 센스는 필요합니다. 칙칙함을 벗고 산뜻함을 입으면 마음도 몸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착각 속에 사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니까요. 봄이라는 계절은 아마 그런 설레는 착각과 함께 맞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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