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 그리고 나, 같은 존재 다른 표현

by Lohengrin

지구 표층에서 '살아있다'라고 불리는 모든 존재는 사실 정교하게 설계된 '물을 만드는 화학공장'이다. 지구 생명은 물에서 기원했기에, 생명은 물로 시작해 물에서 살고 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태양의 빛 에너지를 받아 포도당과 녹말로 치환하는 식물이 그러하며, 그 식물을 섭취해 생존의 동력을 얻는 동물 또한 마찬가지다. 숨을 쉬고, 근육을 움직여 에너지를 쓰고, 땀을 흘리며 수분을 방출하는 인간 역시 자연의 거대한 산화-환원 과정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누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했는가? 우리는 그저 주기율표에 나열된 원자번호들을 잠시 빌려 쓰고 있는 원소 공동체일 뿐이다. 인간이라는 개체는 10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주의 흔한 원소인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 인(P), 황(S) 등을 조합해 '몸'이라는 임시 형체를 만들고 유지한다. 그러다 세포가 노후되어 유지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면, 우리는 여지없이 본래의 모습인 원자의 상태로 돌아간다. 생명이 돌아가는 필연의 고향, 즉 무기물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이다.

지식의 지평을 넓혔던 아인슈타인과 뉴턴의 뇌 속에 머물던 수소와 산소 분자들은 이미 누군가의 신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재활용되고 있을 것이며, 봄볕 아래 피어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의 보랏빛 꽃잎 속에서도 역동적으로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시절인연이라 하고 혹은 윤회라 한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이라 칭한다. 표현의 단어만 다를 뿐, 만물이 원소의 수준에서 순환한다는 본질은 같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꽃'의 기원도 놀랍도록 일관적이다. 양초 위에서 흔들리는 영롱한 촛불, 캠프파이어에서 타오르는 장작불, 그리고 주방 가스레인지의 푸른 불꽃은 모두 탄소와 수소를 기본 골격으로 하는 유기화합물의 연소 반응이다. 많은 이들이 불꽃의 '열기'가 물이 기화하면서 나오는 에너지라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과학적 진실은 그 반대다. 열기는 물이 만들어지는 '사건'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온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라는 매우 안정되고 낮은 에너지 상태로 결합하는 순간, 결합 전후의 에너지 차액만큼 빛과 열의 형태로 세상에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가 주변의 공기와 생성된 수증기 분자들을 때려 분자 운동을 가속화하고, 우리는 그 격렬한 운동의 결과물을 '뜨거운 열기'로 감각한다.

놀랍게도 우리 몸의 세포 안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세포의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 내막의 전자전달계는 장작이 타는 원리와 완벽하게 궤를 같이한다. 음식물에서 추출된 고에너지 전자가 산소로 전달될 때, 수소 이온이 결합하며 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는 장작더미처럼 에너지를 한꺼번에 폭발시키지 않는다. 생명은 에너지를 아주 정밀한 단계로 나누어 방출하는 정교한 제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포도당 한 분자를 에너지 화폐인 ATP로 전환할 때의 효율은 약 40% 수준이다. 나머지 60%는 우리 몸을 데우는 '열'로 소산 된다.


흔히 체온이 생성된 물의 온도 때문에 유지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본질은 물이 만들어지는 화학반응 과정에서 주변 분자들을 진동시키는 에너지에 있다. 그 미세한 진동의 평균값이 바로 36.5도라는 리듬이다. 이 온도는 인체의 효소들이 가장 입체적으로 활성화되어 생명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이 36.5도에는 생명 20억 년의 진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자기 가마에서 흙이 생명의 색을 입기 위해 넘어야 하는 노란빛의 한계, 그 뜨거운 열기는 수소가 산소를 만나 물로 변신하며 세상에 지불하는 '존재의 비용'이다. 장작은 그 비용을 찰나에 일시불로 지불하며 화려한 불꽃을 피우고 사라지지만, 우리 몸은 그 비용을 아주 조금씩 나누어 할부로 지불하며 36.5도라는 은은한 온기를 100년 동안 유지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본질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특히 생명을 바탕으로 한 본질은 더욱 경이롭다. 이 원리를 깨닫고 나면 봄바람에 흔들리는 목련 꽃잎의 낙화와 매화의 달콤한 향기, 물가의 수양버들이 연초록 잎을 내기 전 노랗게 새순을 틔우는 현상이 모두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와 같은 뿌리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태양 에너지를 빌려 수소를 태우고, 그 대가로 물을 내놓으며 잠시 이 땅에 온기를 머물게 하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돌아온 새 봄의 거대한 순환 속에서 서로의 원자를 나누며 연결되어 있다.


그대가 나고 내가 그대다. 어찌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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