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길이에 대한 오해

by Lohengrin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봄입니다.


절기상으로도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春分)'입니다. 남녘으로부터 매화와 산수유의 개화 소식이 들려온 지도 이미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서울 아파트 정원의 양지바른 곳에는 태양빛을 흠뻑 받은 목련 나무가 흰색 꽃망울을 열어 봄의 전령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꽃이라는 존재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금방 피고 지기에, 어영부영하다가는 그 찬란한 순간을 놓칠까 봐 마음 한구석이 괜스레 조바심이 납니다. 사실 꽃은 무리를 지어 피어야 그 색채와 정경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복수초나 할미꽃 같은 야생화처럼 한두 송이만 수줍게 피어 있으면 쉬이 시선을 끌지 못합니다. 결국 모든 풍경은 봐야 보이고, 보고자 해야 보입니다. 봄은 이미 그렇게 우리 곁에 깊숙이 와 있습니다. 다만 내가 그 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아직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바로 '시선의 높이'입니다. 이는 단순히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가 아니라, 자연의 순환을 관조하는 통찰의 높이입니다. 춘분은 지구와 태양의 움직임을 하나의 점으로 상정한 것으로, 태양의 중심이 지구 적도 수직 위에 오는 날입니다. 양력으로는 3월 20일 또는 21일경에 해당합니다.


흔히들 "춘분과 추분에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 엄밀히 따지면 낮이 밤보다 16분 정도 더 깁니다. 이는 낮과 밤의 경계를 태양의 중심이 지평선에 걸리는 시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실제로 우리 눈에 보이고 안 보이는 시점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일출은 태양의 윗부분이 지평선에 나타나는 순간부터이며, 일몰은 태양의 꼬리가 지평선 아래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기 굴절 현상' 영향도 있습니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대기가 햇빛을 굴절시켜, 실제로는 지평선 아래에 있는 태양을 우리 눈에는 지평선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이로 인해 실제 천문학적 위치보다 해는 더 빨리 뜨고 더 늦게 지는 것처럼 관측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일출 시간과 일몰 시간의 차이가 정확히 12시간으로 똑같아지는 날은 춘분 이틀 전에 이미 지나갔습니다.


사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낮의 길이가 밤보다 몇 분 더 길고 짧은지는 그리 절실하게 와닿지 않습니다. 지금 나에게는 피부에 닿는 공기가 추우냐 덥냐, 혹은 길가에 꽃이 피었느냐 아니냐가 훨씬 더 현실적인 지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이 계절은 오로지 태양과 지구의 오묘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 근원은 전적으로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 때문입니다. 지구가 똑바로 서지 않고 기울어진 채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에 계절이라는 위상공간이 만들어집니다. 각 공간마다 다른 환경이 태동하고 소멸하며, 그 변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명이 만들어져 우리가 사는 지구가 비로소 '푸른 별'이 되었습니다.


고대부터 인류는 태양과 지구가 가는 길과 회전하는 반경 위에 점을 찍어, 주기적으로 변하는 자연의 변화율을 일반화시켜 '절기'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자연의 거대한 순환을 눈치채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고 전망할 수 있습니다. 예측이 가능해지면 비로소 대처할 수 있고, 이는 곧 척박한 자연 속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생존의 방편을 마련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인류는 천체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자연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며, 항상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참으로 대단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가 교차하는 지점을 확인한다는 것은 이처럼 계절의 바뀜을 온몸으로 눈치채는 일입니다.


이 계절의 변화를 읽었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번 주말에는 대청소라도 한번 해야 할 듯합니다. 드레스룸의 옷들도 세탁소에 보낼 것을 추리고, 화사한 봄옷들을 손이 잘 닿는 곳으로 전진 배치시켜야겠습니다. 그래야 곧 꽃의 세상으로 바뀔 들과 산으로 가벼운 소풍을 갈 채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분 좋은 콧바람이 살랑이는, 바야흐로 봄의 시작 춘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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