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왜 이토록 모순적인 상황이 동시에 존재하는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를 묻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작가는 집필 과정에서 결국 깨닫는다.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으며, 죽은 자들의 기억이 산 자들을 구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가는 간파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잔혹하게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함과 존엄함 사이, 그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해 보이는 허공의 길을 건너기 위해 우리는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시인과 작가는 세상의 아픔을 타인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의 가슴으로 보듬으며 함께 고통을 느낀다. 그들의 피와 눈물은 감성과 융합되어 시와 문장이 되고, 비로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공명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세상이 생성되고 운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전이(Phase Transition)'의 현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감각하는 존재들이다.
"세상은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문학적 표현이다. 이 깊은 문학적 성찰을 과학의 언어로 치환해 보자.
우리 신체의 신비는 유한함 속에 깃든 무한함에 있다. 성인의 체내에 있는 혈관의 총 길이는 대략 10만 km에 달하며, 이는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거리다. 특히 노폐물을 걸러내는 신장(Kidney) 내의 미세한 사구체 혈관망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밀도로 응축되어 있다. 어떻게 인간의 몸이라는 한정된 3차원 공간 안에 이토록 방대한 길이의 실체가 존재하며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 생명이 좁은 공간 속에 무한에 가까운 구조를 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198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케네스 윌슨(Kenneth Wilson)이 '재규격화 군(Renormalization Group)' 이론을 통해 물질의 상태가 변하는 '상전이'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해 냈다. 그의 이론은 "시스템의 스케일이 바뀌어도 물리 법칙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통찰에 기반한다. 작은 격자들이 모여 큰 구조를 이룰 때, 미시적인 세부 사항들은 사라지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행동 양식은 유지된다는 논리다. 이는 복잡한 수식 이전에, 무한과 극미의 문제를 단일한 논리 체계로 통합한 인류 지성의 쾌거였다.
천재는 보이지 않는 과녁을 맞히는 사람이다. 단순히 보이는 과녁을 잘 맞히는 이는 '똑똑한 사람'에 불과하다. 보통 사람들은 "새가 높이 날면 멀리 본다"는 명제에만 머물지만, 윌슨은 "새가 아주 높이 날아 세상을 내려다보면, 세부적인 형체는 흐릿해지고 오직 본질적인 윤곽만 남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기서 '흐릿해진 윤곽'이란 스케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차원'과 '대칭의 구조'를 의미한다. 그는 이를 통해 우주를 관통하는 불변의 원리를 꿰뚫어 본 것이다.
문학가와 과학자는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주의 기원과 생성의 원리를 들여다보는 통찰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다. 인간 존재라는 '상변이'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평형과 비평형, 선형과 비선형의 과정이 혼합되어 미래로 흘러가는 거대한 흐름을 눈치채는 것. 그것이 바로 지성(Intelligence)이다.
유한한 공간에 무한한 실체가 상존하는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게 되면, 지금 만개한 벚꽃 잎이 단순히 하얀색을 넘어 왜 그토록 애잔한 연분홍빛을 머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감각이 깨어난다. 꽃잎 하나에 담긴 우주의 질서와 찰나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게 되는 것이다.
아! 이 봄꽃의 향연은 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어야만 하는가. 영원할 수 없기에 더욱 치열하게 피어나는 그 짧은 생의 주기는, 역설적으로 무한한 우주의 순환을 증명한다. 산다는 것은 바로 그런 모순과 경이로움을 코끝의 향기로, 그리고 차가운 이성으로 동시에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우리는 그렇게 유한한 몸으로 무한한 우주를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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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세상은 왜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우며 동시에 아름다운가? (https://brunch.co.kr/@jollylee/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