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야만과 석유의 역습

by Lohengrin

전쟁으로 인해 가장 처참한 고통을 겪는 이는 누구인가? 돈 없고 빽 없는 일반 서민들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전쟁의 야만성과 폭력을 끊임없이 목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오만은 망령처럼 되살아난다. 경쟁자를 굴복시켜 생존 우위를 점하려는 본능이 동식물의 생리라고 할지라도, 그 흉악한 본성을 억제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우리는 '인간의 도리'라 부른다. 이를 위해 인류는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고 집단지성을 축적하며, 공동체의 공생을 위해 국민국가라는 틀을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는 선의의 지성보다 야만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회귀하는 듯해, 착잡함을 감출 수 없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행위와 생각의 스펙트럼은 방대하다. 절대적인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으며, 상황과 환경에 따라 내면의 양면성이 발현되는 빈도가 달라질 뿐이다. 하지만 지금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국지전을 보면, 인류의 무게추가 점차 악의 축으로 기울고 있다는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새로운 분쟁이 발생함에 따라 이전의 비극이 잊히는 악순환 속에서, 우리는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타인의 고통을 관조하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내 가족과 내 국가만 무사하면 된다는 이기심이 방관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전쟁은 이미 우리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위협하고 있다. 휘발유 가격 폭등은 시작일 뿐이며, 석유를 원료로 하는 재료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공산품과 생필품 생산이 멈추는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다. 피부로 느껴지지 않던 전쟁의 여파가 비로소 나의 생존 문제로 치환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정부의 주도적인 위기관리로 간신히 버티고 있으나, 진정한 위기는 이제부터다. 분쟁이 조속히 종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자동차 5부제 운행 같은 불편의 차원을 넘어선다.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동력의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연료로서의 석유에만 민감하지만, 실제로 석유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제품은 1만 가지가 넘는다.


스마트폰의 보호필름, 플라스틱 용기, 페트병, 비닐봉지, 포장재는 물론 가전제품의 내부 부품까지 석유의 산물이다. 우리가 입는 폴리에스터와 나일론 소재의 의류, 자동차 타이어, 화장품, 주방 세제, 심지어 현대 의학의 핵심인 의약품 원료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물건이 석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기반으로 한다. 석유는 단순한 연료를 넘어 현대인의 '제2의 피부'이자 생존도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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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이 석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억 년 전 태양 에너지가 응축된 '광합성의 화석'이다. 과거 얕은 바다나 호수에 살던 플랑크톤과 미생물 유기체가 사후 퇴적되어 진흙과 섞이고, 그 위로 지층이 쌓이며 발생한 지열과 압력에 의해 탄화수소 액체로 변모한 것이다. 결국 석탄과 석유를 사용하는 것은 과거 지구가 갈무리해 두었던 생명의 에너지를 꺼내 쓰는 행위다. 생명체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으며 에너지를 순환시키는데, 석유와 석탄은 그 순환 과정 중 땅속에 보존된 에너지의 저장고다.


지구 대기는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비율이 상호작용하며 균형을 맞춰온 순환의 역사 속에 있다. 현재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약 21%(210,000ppm)이며, 이산화탄소 농도는 2024년 기준 약 0.042%(422ppm)를 기록하며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어야 할 탄소를 인간이 에너지를 위해 강제로 끌어올려 대기 중으로 방출하면서, 지구 온난화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전쟁은 이러한 자원 공급망을 파괴하여 우리를 당장 불편하게 하지만, 석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인류의 터전 자체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중동의 전운으로 원유 수송로가 막히자 우리의 일상은 모래성처럼 흔들린다.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고통은 기득권층보다 훨씬 빠르고 깊게 다가온다. 전쟁의 종결만을 무기력하게 바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화가 나지만, 동시에 이는 인류에게 던지는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에너지 주권을 확보하고 지구 생태계와의 공존을 위해, 에너지 전환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실천을 서둘러야 할 때다. 일단은 차를 세워두고 걷거나 전철을 타고 움직여,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데 동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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