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오늘로 완전 종결, 지구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전격 합의."
오늘 아침, TV를 켰을 때 이런 소식이 긴급 속보 자막으로 흐른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일까요? 하지만 곧이어 화면 구석의 날짜를 확인하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바로 일 년 중 가장 '무해한 거짓말'이 허용되는 4월 1일, 만우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데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밸런타인데이, 삼겹살데이, 빼빼로데이 등 특정 상품의 소비를 부추기는 상업적 마케팅의 산물들이 도처에 널려 있지만, 만우절은 그 결이 확연히 다릅니다. 만우절은 지엽적이고 국지적인 상술이 아닌, 인류 공통의 '위트'와 '해학'이 담긴 전 세계적인 축제에 가깝습니다. 물론 유쾌한 장난과 불쾌한 사기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창의적인 유머와 악의적인 기만 사이, 그 위태로운 경계를 긍정의 에너지로 채우는 것이 만우절의 진정한 묘미일 것입니다.
현대인은 속임수와 변명이 득세하는 피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니, 정작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유머와 재미는 일상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러한 삭막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역설적이게도 만우절이 가진 사회적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긴장의 끈을 풀고 서로가 속고 속아주며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만우절의 장난에는 지켜야 할 품격과 엄격한 선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악의가 없어야 하며, 전통적으로는 정오 이전에 장난을 치고 그 이후에는 반드시 그것이 장난임을 밝혀 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합니다. 장난이 사실로 오인되어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유머가 아닌 '범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더욱 흐릿해졌습니다. 목소리를 변조하는 딥보이스부터 실제와 구분조차 불가능한 딥페이크 영상까지, 정교한 조작이 일상이 된 세상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일 년 내내 만우절보다 더 만우절 같은 거짓된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역대급 만우절 거짓말'로 회자되는 사례들은 우리에게 기분 좋은 추억을 선사합니다. 그 선두주자는 단연 영국의 공영방송 BBC입니다. 2008년, BBC는 남극에서 하늘을 나는 펭귄 무리가 발견되었다는 가짜 뉴스를 보도했습니다. 유명 코미디언 테리 존스가 직접 남극을 방문해 비행 장면을 목격하는 정교한 영상은 전 세계 누리꾼들의 눈을 의심케 했습니다. 물론 이 영상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정성껏 만든 가짜였지만, 전 세계에 경쾌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BBC의 이런 전통은 깊습니다. 1957년에는 "스위스에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스파게티 면을 수확한다"는 방송을 내보내, 시청자들이 재배법을 묻는 전화를 빗발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 얼마나 평화롭고 창의적인 장난입니까?
우리나라에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유쾌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지난 2020년, '설악산 흔들바위가 관광객들에 의해 추락했다'는 소식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문화재 훼손 혐의로 관광객들이 입건되었다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덧붙여지자, 결국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직접 흔들바위의 건재한 모습을 찍어 올리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반면,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만우절의 거짓말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2003년 4월 1일 전해진 홍콩의 별, 장국영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 팬들에게 지울 수 없는 충격을 안겼습니다. 모두가 '만우절 장난치고는 너무 심하다'며 애써 외면했지만, 그것이 잔인한 사실로 밝혀졌을 때의 허탈함은 만우절이 주는 웃음과는 정반대의 슬픔이었습니다.
이처럼 만우절의 경계는 상대적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농담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경찰이나 소방 당국에 거는 허위 신고는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행위입니다. 만우절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우리는 매일같이 씁쓸한 기만과 거짓 사실들과 마주합니다. 유쾌한 유머는 사라지고 불쾌한 사기만이 남은 삭막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제 창의와 사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삶의 온도는 점점 낮아지고, 서로를 경계하는 눈초리만 날카로워집니다.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허탈함 대신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다정한 거짓말은 어디 없을까요? 기쁘게 속아줄 준비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 삭막한 일상을 녹여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와 같은 고백이라면, 백 번을 속아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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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한국과 미국 대학생의 차이 ( https://brunch.co.kr/@jollylee/1084 ) /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쟁 ( https://brunch.co.kr/@jollylee/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