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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21. 2022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쟁

우리 사회는 경쟁을 적과 싸우는 전쟁으로 간주한다. 경쟁(競爭)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목적에 대하여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다툼. 생물의 여러 개체가 제한된 환경을 이용하기 위하여 벌이는 상호 작용"이다. 전쟁(戰爭)은 "무력을 써서 행하는 싸움"이다.


전쟁은 하면 안 되지만 경쟁은 해야 한다. 경쟁이 지나쳐 전쟁으로 가기도 하지만 경쟁이 전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 빠져야 가능하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인정이다. 국가 단위가 아닌 개인적 관계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개인 간 경쟁이 싸움으로 확대되는 데에는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수위를 넘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에서도 하지 말아야 말이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것과 같다. 그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는 수위가 사랑싸움으로 그칠 것인지, 이혼싸움으로 갈 것인지 기로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다. 참 묘하고 신비로운 선이다. 마음의 선이란 그런 것이다.


경쟁의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 간의 heck 라이벌 경쟁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어느 대학에서 많이 나오는지 경쟁하는 정도라기보다는, 학생이니까 할 수 있고 벌일 수 있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돋보이는 heck 경쟁 말이다. 두 학교 간의 대표적 hack 경쟁으로는 2006년 칼텍 캠퍼스에 있던 플레밍 대포를 MIT 학생들이 자기네 캠퍼스로 가져다 놓은 일이 있었다. MIT 학생들은 어떻게 이 대포를 칼텍에서 MIT로 옮겼지는 써붙여 놓고 포신을 칼텍 쪽으로 해놓았다. 칼텍 학생들이 나중에 찾아갔다고 한다.  2014년에는 MIT 캠퍼스에 학교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머그컵이 대량으로 뿌려졌는데 뜨거운 음료를 부으면 컵의 색깔이 검은색에서 칼텍의 상징색인 오렌지 색으로 변하면서 MIT로고도 Caltech으로 바뀌고 문구도 한 글자가 덧붙여져 'the HOTTER institute of technology'로 바뀌는 것이었다. MIT보다 더 핫한 공대가 컬텍이라는 의미다. 

서로 재치 넘치고 기발한 발상들이 아닌가? 근데 이들 학교는 미국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비행기를 타고도 6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다. 이런 먼 거리의 공과대학들이 펼치는 상상 초월의 heck 경쟁은 또 어떤 아이디어로 상대방을 놀라게 해줄까 은근 기대가 되기도 해서 이런 heck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에 회자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학으로 눈을 돌려보면 대학 간의 경쟁은 연세대와 고려대가 펼치는 연고전 행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를 통한 대학들의 정기전이야 세계 어느 나라에나 볼 수 있는 이벤트다. 대학생의 젊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육체적 힘과 재능일 수 도 있고, 기발한 창의성이 돋보이는 아이디어 경쟁이 될 수 도 있다. 스포츠를 통해서 경쟁을 하고 이를 이벤트 화하는 것은 젊은이의 한쪽면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스포츠 정기전을 하는 동안 펼쳐지는 응원전이나 여러 행사들을 통해 학생들의 기발한 문구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만한 기억나는 이벤트들은 없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MIT의 heck와 같은 기상천외한 학생들의 발상을 보고 싶어 하고 기대하게 된다. 엉뚱함과 재치는 새로운 상상력의 기본 재료다. 기존의 틀과 범주를 벗어난 새로운 조합이다. 틀을 벗어나면 새로운 관점이 된다. 세상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천재들로 인해 새롭게 바뀌어 나가지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기성세대의 아량도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 대학에서 MIT처럼 그레이트 돔 꼭대기에 경찰차나 소방차를 올려놓고 경쟁 대학의 물건을 훔쳐다가(?) 놓는 일이 가능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지명수배령이 내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 MIT에서는 아예 학교 웹사이트에는 해킹 에티켓이라는 가이드라인까지 명시되어 있다. "해킹은 독창적이어야 하고 머리를 써야 하고 반드시 안전이 담보되어야 하고 시설물에 피해가 없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게 하는 족쇄를 푸는 일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자기가 못해본 것을 적어도 후대의 젊은이들은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미덕이다. 그리고 흐뭇하게 지켜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돼"라는 소리보다는 "이것은 이래도 되고 저것은 저래도 돼'라는 가능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을 북돋아주어야 한다. 그때가 되어서야 MIT heck의 기발함을 부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heck이 학문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본질과는 관계가 없다고 할지라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릴 수 있는 유쾌한 상상력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도전이 되지 않을까?




ㅇ 표지사진 : https://www.youtube.com/watch?v=kMj58IX_kEc 캡쳐

https://www.youtube.com/watch?v=kMj58IX_kEc / 2019년 드론 촬영 MIT 2학년 Raymond Huff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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