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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22. 2022

자동차 네비 때문에 사라지고 있는 방향감각

'길을 나선다'는 것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거다. 길을 나서기 전에 반드시 하는 행위가 있다. 어느 길로 해서 갈 것인지 노선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가까운 거리이고 자주 다녀 익숙한 곳이면 이미 머릿속에 입력된 방향감각 정보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초행길이나 먼 길을 가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지도를 펼쳐 들어야 한다. 자동차에 내비게이터가 장착되고 휴대폰에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들어오면서부터 지도를 펼치는 일은 없어졌지만 아날로그적인 행위만 디지털 행위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지도를 검색하게 된다.


디지털 내비게이터는 혁신의 아이콘이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기능 중에서도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약속 장소를 찾아갈 때 어김없이 휴대폰 지도를 열고 휴대폰이 지시하는 방향대로 따라간다.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다. 시동을 켬과 동시에 내비게이터에 목적지를 입력한다. 매일 왔다 갔다 하는 사무실과 집일지라도 자동적으로 내비게이터를 켠다. 도로 막힘 상황까지 내비게이터가 알려주기에 최소 시간, 최단거리를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생활에서 내비게이터 없이 운전하라고 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비게이터가 없던 시절엔 차에 종이지도책 한 권씩은 꼭 실려 있었다. 심지어 골프장 전용 지도까지 있었다. 종이지도책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운전자의 독수리 같은 시선이 중요했다. 길 안내 표시판을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표시판을 놓쳐버리면 먼 길을 돌아가거나 다시 지도를 펼쳐 들고 확인해야 하기에 갓길에 차를 세워야 한다. 위치와 방향을 표시하는 도로 표시판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도로명이 연결이 안 되고 다른 길 이름이 쓰여있으면 방향감각까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운전자가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내비게이터가 지시하는 데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세상에 3명의 여자 말은 꼭 믿고 따르라는 속설이 남자들 사이에서는 있다. 집에 있는 와이프 말과 골프장 케디, 그리고 내비게이터에서 안내멘트를 하는 여자의 말이다. 이 세명의 여자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뻔하다. 고생한다는 거다.


내비게이터 아가씨의 말에 홀리듯 따라가야 목적지에 최단거리, 최소 시간으로 갈 수 있다. 평소 다니던 감각만 믿고 내 맘대로 운전하다가는 예상했던 시간 내에 빨리 도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실시간 도로 상황까지 감안해 안내하는 내비게이터를 인간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 결국 내비게이터 아가씨의 목소리는 사이렌의 노랫소리와 같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그저 네비 아가씨의 말을 따라 좌회전, 우회전, 직진을 하기만 하면 된다.


이 내비게이터 때문에 방향과 위치 감각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아직까지 종이지도를 펼쳐 목적지를 찾는 것 정도야 까먹지 않고 있는 상황이지만 점점 도로 표시판에 적혀 있는 도로명과 방향안내판을 읽지 않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아직은 내비게이터가 지시하는 방향과 앞에 보이는 도로표지판의 위치정보를 비교해서 가는 경우가 많지만 시선의 위치가 주로 내비게이터로 쏠리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자율주행차가 이미 시험운행을 하고 있는데 자율주행차가 본격적으로 출시되면 이 인간의 위치와 방위 인식 감각능력은 점점 더 떨어질 텐데 걱정스럽다.


인간의 감각기능은 사용하지 않으면 점점 퇴화될 수밖에 없다. 진화의 방향성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고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방향 감각과 위치 지각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내비게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도로 표지판만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 봐야겠다. 엉뚱한 길로 접어들 수 도 있고 바뀐 도로 사정 때문에 속도위반 카메라에 찍힐 수 도 있겠지만 차 바깥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집중하여 운전할 수 있게 하는 감각을 살리는 것도 치매를 예방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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