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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28. 2020

호모 사피엔스는 퇴행하고 있는가?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은 계속 진화하고 있는가? 지적 능력, 생물학적 능력 모두 말입니다. 지적 능력의 향상은 그런대로 수긍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육체적 능력도 향상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머뭇거리게 됩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 당연히 근력이 약해질 테니 그런 시간적 입력은 배제하고서라도 말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퇴행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 때문입니다. 컴퓨터와 같은 기계의 발달로 인해 브레인을 사용하는 기능이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수십 개씩 외우던 전화번호를, 지금은 집 전화번호조차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이 호모 사피엔스의 퇴행을 증명하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분명 있습니다. 단순한 숫자를 외워 기억하는 기능을 이젠 컴퓨터를 다루고 빅데이터를 다루는 쪽으로 확대되어 인간 브레인의 기능은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관점이 정확한 해석인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인간의 수명만 해도 그렇습니다.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2019년 남성의 기대수명은 80.3년, 여성은 86.3년입니다. 이는 2018년 남성의 기대수명 79.7년, 여성 85.7년보다 남자는 0.5년, 여자는 0.6년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최대 수명은 115세가 정점입니다. 최장수로 오래 살았던 사람의 기록은 1997년, 122세까지 살았던 프랑스의 잔 칼망(Jeanne Calment)이라는 여성 분이셨습니다. 평균수명은 계속 늘려왔지만 최대 수명은 늘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100m 최고 기록을 가진 우샤인 볼트가 세운 기록도 2009년 9초 58 이후 아직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기대수명이 30년 이상 길어지고 평균 키도 10Cm 이상 커졌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생리적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20세기에 인류는 영양, 의료, 위생 개선으로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21세기에는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어지고 생물적 상한선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리 잘 먹고 적절히 운동을 해도 인류 진화의 결과로 한계 지워진 생물적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생물학적 한계에 대해 질문을 하고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버드 의대에서 수명 혁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노화의 종말'이라는 책을 낸 싱클레어 교수가 있습니다. 싱클레어 교수는 '노화도 질병'이라고 정의합니다. 안 늙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건강하게 말입니다. 늙는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은 20대를 정점으로 생리적 지표가 꾸준히 떨어져 100살이 되기 전에 생을 마감하고 장수 유전자를 물려받은 소수의 사람조차도 115세를 넘기기 힘듭니다. 스포츠도 1980년을 정점으로 정체기라고 합니다. 우샤인 볼트는 '최대 달리기 속도를 낼 수 있는 극단적으로 드문 표현형을 지닌 예외"로 인정합니다. "스포츠 스타는 과학의 힘이 아니라 유전자의 힘"으로 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20세기는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를 정도로 인류활동이 지구환경에 영향을 준 시기입니다. 무분별한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지구 온난화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인간의 키가 한계에 이르고 젊은 층의 근력과 지구력이 저하되어 약골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모두 인간이 저지른 악영향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생물학적 한계를 끌어올리는 것도 역시 인간에게 달려있다는 역설이 담겨있습니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만이 모든 진화의 해결책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지구의 삶을 인간에 의해 단축시키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방법은 자명합니다. 지구 상 모든 생명이 같이 공생하고 공존하는 법을 최대한 유지하면 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주의가 아니더라도 같이 공생하는 합리적 공리주의는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관점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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