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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24. 2020

코로나 19 속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오늘은 반드시 이 인사를 하고 지나가야겠죠. 크리스마스 이브이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청소년기에 느끼던 그런 크리스마스 때의 분위기를 감지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교회에 나가지도 않고 그래서, 더욱 그런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길가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장식하고 캐럴도 들려오고, 전철역에서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도 들리면 들뜬 마음이 생기곤 했는데 말입니다. 아이들 클 땐 집에 반짝이 조명도 설치하고 트리도 장식하고 했습니다. 감정이 메말라간다는 것을 나이듬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습니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나이듬과 감정의 메마름을 연결시키는 것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코로나 19로 조용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야 하는데서 감정의 메마름의 핑계를 들이대어 봅니다. 요즘은 안 되는 일에는 코로나 19 때문이라고 이유를 달면 대부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쁜 코로나 19.


백화점 등 주요 건물 외벽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도 예전 그대로입니다. 다만 골목마다 있던 레코드 가게들이 사라지고 음악의 저작권 문제가 등장한 이후 

길가에서 카세트 테이프와 CD를 팔던 손수레가 없어진 이후, 시즌에 맞게 들려주던 캐럴이 거리에서 사라진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음악 하나 때문에 세상을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진 않을텐데 ---


"거리에서의 캐럴 사라짐"은 사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음악은 리듬의 반복으로 구성되어 기억을 회상하는 트리거 역할을 하는 단서에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리듬은 순서화로 저장됩니다. 순서가 없는 것을 리듬이라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는 "동해물과 ~" 하면 자연스럽게 "백두산이 ~"가 따라 나옵니다.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리듬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음 음률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거리에서 캐럴의 사라짐은 우리의 기억을 떠올릴 단초를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결국 보고 들리는 현상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결론입니다.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변화로 세상을 보는 감정선이, 따라 변하게 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가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려 미소 지어 보는 것도 우리의 일화 기억을 되살려 기억의 저장고에 콧바람을 쒜어주는 일입니다. 생각은 철저히 기억에서부터 옵니다. 기억은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고요. 가만히 관조해보면 어느 것 하나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숨 쉬는 숨 하나까지도 지구 상 생물의 호흡과 광합성과 맞물려 있습니다. 내 몸 하나에 138억 년 우주와 46억 년 지구의 역사, 그리고 내 생명의 나이 56세의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듯이 말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대형사건 사고 등 밝지만은 않은 소식들로 세상이 채워져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감옥 아닌 감옥처럼 집에서만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불을 밝혀야 합니다. 세태에 찌들어 크리스마스를 잊은 지 오래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크리스마스에 작은 선물이나마 받고 기뻐하던 과거의 그 어느 때를 떠올리면서 미소 지어 보면 가슴 한 구석에 훈훈한 기운이 발동합니다. 때마다 그때에 맞는 기억들을 불러내어 술안주처럼 되뇌어 보는 것, 그것이 세상사는 일입니다. 가끔 뒤돌아보고 지나온 발자국이 찍힌 눈 쌓인 둔덕과 칼바람 불어 싸락눈 날리던 골목길의 썰렁함조차 되새겨 봅니다. 춥지만 그래도 살만한 것이고 사는 게 더 좋은 것이라는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거창한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삽니다. 하지만 그 꿈과 희망은 항상 우리 곁에 있던 평범한 것들로 돌아옵니다.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것들이 결국 우리의 행복이고 꿈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식구들의 얼굴을 이 아침에 볼 수 있고, 떠오르는 여명의 붉은 기운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잘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래서 희망과 따뜻함을 대변하는 단어로 살아있어야 하고 살아 있습니다.


'기름 부은 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할 일이고 '믿지 않는 자' 또한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루의 휴식을 부여받고 세상의 평화와 구원을 상기시키게 되니 축복받은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모두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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