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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23. 2020

자연의 리듬이 소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기

겨울철 기온을 일컫는 대명사 중에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굳이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최근에는 그 현상을 체감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기온이야 대기의 조건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기에 시간적 경계를 그어놓고 '그렇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략 경험에서 나온 보편화를 들이대면 '그런가 보다'하고 느끼는 정도일 겁니다. 자연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표현입니다. 좀 더 자연과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삼한사온'에서 자연의 주기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자연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주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리듬이 있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리듬은 균형입니다. 균형이 맞지 않는 리듬은 소음에 지나지 않아 리듬이라 하지 않습니다. 리듬은 본연의 소리로 우리 귀에 들립니다. 리듬이 잘 맞으면 편안해집니다. 곧 생명을 이어갈 수 있고 있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겨울철 기온의 오르내림 현상조차 사실은 자연의 리듬이었는데 근래에 지구온난화의 역풍으로 이 리듬이 소음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삼한사온의 현상이 사라져 리듬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연의 리듬이 깨지면 그 리듬 속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지장을 받게 됩니다. 사람 개개인에게 온도 1~3도의 변화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한여름 30도를 넘나드는 기온에서부터 지금 이 겨울 영하 10도를 밑도는 기온까지 무려 40도가 넘는 온도 편차에도 굳건히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의 지구온도 1도 변화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옵니다. 생태계 전체의 흐름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지구 생명체의 종말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기후학자들이 이산화탄소 배출 줄이기에 그렇게 목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인간이 저질러 놓고 온도를 높이고 있는 이 현상을 지구라는 생명체가 어느 정도 흡수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구온도조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가 넓은 아량으로 버텨주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구가 버텨줄 이 한계치를 넘어서면 더 이상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말 것입니다. 늦게나마 인간의 오만함과 편안함에 안주하여 자연을 파먹고 살아왔던 과거를 후회하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나마 요 며칠은 삼한사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까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더니 이번 주중에는 그래도 조금 기온이 올라있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삼한사온은 아닐지라도 그런대로 차가움과 따뜻함이 교차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모레가 크리스마스인데 흰 눈이 펑펑 왔으면 좋을 텐데 삼한사온의 리듬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높음 쪽으로 리듬이 맞춰져 눈보다 비를 볼 가능성이 더 높은듯하여 조금 안타깝기도 합니다. 코로나 19로 집에 갇혀 있긴 하지만 창밖으로 펄펄 내리는 눈이라도 감상하면 거실 한편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솜 눈이 진짜로 치환을 할 텐데 말입니다.


차 떼고 포떼고 순수 과학적으로만 눈과 비를 본다면 모든 자연환경에는 비가 눈보다 더 우선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더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말입니다. 눈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일단 기온이 영하를 유지해야 합니다. 눈이 내려온 산천을 다 덮습니다. 하얀색 천지입니다. 황홀합니다. 그 이상 무엇이 좋을까요? 지표 위에 식생을 덮어 얼어 죽는 것을 방지해 줄까요? 천천히 녹아 대지에 물기를 전달해줄까요? 또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음 ~~ 눈은 역시 감정을 현실에 비추는 매개체 정도인 것 같습니다. 1년 중 좀처럼 볼 수 없는 자연현상이기 때문이며 그 현상 자체가 온통 흰색인 자극적인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비는 어떨까요? 기상이변으로 인한 가뭄이 아니라면 연중 가끔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입니다. 산천의 식생을 풍부하게 하고 살아가게 합니다. 생명의 원천으로서 '비'만 한 것은 없습니다. '눈'에 비하면 백배 더 효율적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의 계절인 겨울에 내리는 비도 눈보다는 훨씬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일단 길이 미끄럽지 않습니다. 걷는데도 지장이 없습니다. 미세먼지도 걷어내 함께 대지로 돌아갑니다.


눈이 덮어준다면 비는 같이 데려갑니다.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일까요?


우열을 따질 수 없는 것일까요? 그래도 같은 조건을 놓고 비교 나열해 보면 저는 '비'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물론 눈과 비라는 자연현상을 바라보는 한 인간의 작은 소견일 뿐입니다. 천차만별의 상대적 감정으로 눈을 보고 비를 보겠지만 그래도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느낌의 형상이 있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현실은 감정을 메마르게 하는가 봅니다. 흰 눈 덮인 대지의 눈부심과, 뽀드득 거리는 눈길의 감성조차도 일상의 미끄러움과 질척거림의 소리로 치환됩니다. 감상보다는 일상의 편의가 우선하는 게 도심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잠시나마 도심을 벗어나 있으면 그나마 흰색의 자연을 즐기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항목으로 떠오릅니다.


조건이 결정되고 나면 그 나머지는 부수적인 일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소는 생활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중 하나로 인정받게 됩니다. 하지만 도심이냐 시골이냐의 공간 감각적인 구분만으로 감정의 경계까지 그을 필요는 없습니다. 조화와 균형은 여기에서도 작동합니다. 감상과 현상이 공존해야 합일체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눈의 감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눈 쌓인 대지와 초목과 산하를 거닐고 뛰어봐야 합니다. 비의 현실감을 알기 위해서는 미세먼지 가득했던 도심에서 한결 상쾌해진 '비 온 뒤의 공기'를 느껴봐야 합니다.


그렇게 비와 눈의 조화처럼 세상은 조화와 균형을 통해 또 한 세상을 펼쳐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일입니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데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말입니다. 그래도 맑고 밝고 따뜻한 날이 더 좋은 것은 인지상정일 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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