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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7. 2021

남의 페이스북 훔쳐보다가 잔잔한 감동이 ---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주 영상의 기온을 보인 덕에 상대적 체감온도가 엄청 낮습니다. 볼이 얼얼해 출근을 했습니다. 추워서 무선 이어폰을 낄 생각도 못하고 전철을 탄 관계로 휴대폰 안에 있는 콘텐츠 서핑을 이것저것 해봅니다. 회사 이메일도 체크하고, 음 회사 관련 주의가 필요한 기사도 있다는 알림도 확인하고 살짝 긴장해 봅니다. 그리고 스팸메일 가득한 개인 문서함을 뒤져 확인해야 할 이메일이 묻혀 있는지도 살펴봅니다. 일단 회사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과 카톡방의 체크를 끝내고 별일 없으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봅니다.


가까운 지인들과 연결된 SNS 채널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많은 콘텐츠를 공유하는 편은 아니라서 주로 지인들의 주변 소식을 눈팅하는 수준이긴 합니다. 그래도 지인들의 여러 생각과 주변 소식들을 전해 들을 수 있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어가 봅니다. 아침 전철에서도 지인들이 포스팅한 페이스북을 훑어보며 키득키득 웃음이 나기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저하고 페이스북 친구는 아닌데 제 지인의 페이스북 계정과 연결되신 분의 콘텐츠가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상당한 미모의 대문사진에 눈이 간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ㅠ.ㅠ


휴대폰 속 페이스북 페이지를 쭉 내리는 와중에 콘텐츠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모들이 큰 소리로 싸우고 어린아이가 그 옆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나갈까?'하고 조용히 다가가 아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밖에 나와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무표정이었던 아이가 갑자기 크게 울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무서워서 울고 싶었구나.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마음을 스스로 지키고 있었구나.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어서 핸드폰 화면 속에 숨어서---. 그래서 95년생 사샤 슬론의 자전적 노래인 OLDER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다음에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그땐 너도 이 노래가 생각날 거야 아마"라는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샤 슬론(Sasha Sloan)의 'Older' 노래를 유튜브 URL로 연결해 놓았습니다.

페이스북 안의 짧은 글이지만 글쓴이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제가 아는 분은 아니지만 이렇게 제 지인의 계정을 타고 우연히 들어와 글을 훔쳐 읽고 있지만 오늘처럼 추운 기온을 한 순간에 따뜻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얼른 유튜브로 들어가 아이에게 들려주었다는 노래를 검색해 이어폰을 끼고 들어 봅니다. 곡의 음률은 단순해 금방 익숙해지는 친근함으로 다가옵니다. 가사도 어려서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무시하고 싶었고 부모님처럼 되지 않기를 다짐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많은 걸 알게 됐고 부모님도 영웅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내용입니다.


부모님이 싸우는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아이의 심정을 너무도 정확히 콕 집어 들어내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이런 트라우마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서 내 자식들에게는 이런 모습 보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는 것이라는 것도 살면서 깨닫게 되고 알게 됩니다. 근래 아동학대와 관련된 많은 기사들이 오버랩되면서 새삼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늘 아침 훔쳐본 페이스북의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싸운 적이 없었던가, 내가 애들 키우면서 직면했던 갈등을 애들 앞에서는 어떻게 풀어냈는지 말입니다. 저는 살면서 크게 싸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긴 합니다. 자랑이 아니고 그저 그냥 갈등을 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치고받고 언성을 높여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보다는 조용한 침묵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차라리 감정을 드러내고 대화를 하면 빨리 해결될 수 도 있을 텐데 감정이 일상에 묻힐 때까지 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힘든 시간을 잘 참아주고 버텨준 아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샤 슬론의 older를 다시 들어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5WwinAOb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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