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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1. 2021

떠나 있다오면 다시 보이고 느끼게 되는 것들

4월 첫날입니다. 3월 한 달을 휴업으로 쉬고 다시 출근길에 나선 아침입니다. 한 달만의 출근이어서 그런지 밤새 뒤척였습니다. 초등학교 소풍 가는 날 저녁의 설렘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아니 골프장 가기 전날 밤의 긴장감 같은 걸 겁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에 마주 서서 비장함을 다지는 느낌이 더 강하니까요.


그런 긴장감에서인지 평소 5시 반 기상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습니다. 직장생활 평생, 5시 반 기상임에도 어제저녁 잠자리에 들 때는 다시 최면을 걸어 둡니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그런 긴장이 배꼽시계 울리듯 어김없이 작동을 합니다. 그렇게 한 달을 쉬고 있던 루틴을 다시 되새김질합니다. 양치를 하고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하고, 어제저녁 걸어둔 옷을 챙겨 입습니다. 간단히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백팩을 둘러매고 집을 나섭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뭐 놓고 나가는 것은 없는지 루틴을 되돌아봅니다. 아차 아침마다 먹던 종합영양제 한 알을 빼먹었군요. 신발을 다시 벗고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현관문을 엽니다. 하루 안 먹어도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를 나섭니다. 상큼한 바깥공기가 코끝에 전해지고 귓전으로는 온갖 새소리들이 합창으로 들려옵니다.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여러 종류의 새소리들이 뒤섞여 새 종류를 구분하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봄을 맞아 번식기에 접어들어 그런 모양입니다. 아파트 담벼락 밑으로 노란 개나리와 흰색 벚꽃이 절정으로 피었습니다. 양지 녘에 피었던 목련꽃은 이미 꽃잎을 떨구고 그 자리를 초록의 잎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저 지나쳐 보이고 들릴 듯한 현상들이 생생히 꽂혀 듭니다.

일상을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오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현상입니다. 평소의 루틴에 젖어있으면 옆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 느꼈다는 것은 나의 평상심과 안전에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뭔가 위급하고 위협적인 일상이었다면 절대 간과할 수 없을 겁니다. 편하다는 것은 이미 결과를 예측할 수 있기에 그냥 하는 겁니다.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지 않아도 어떻게 될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불현듯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의 루틴 조차도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日常)은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을 말합니다. 매일 직장으로 출근하던 루틴을 일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한 달의 휴업을 끝내고 출근하니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나는 일상에 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퍼득 듭니다. 일상은 지금 있는 이 자리의 행위들이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익숙함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간다"라고 자위하고 안심했던 것입니다. 반복되어 편하게 느껴지던 일상은 그래서 삶의 관점을 바꾸지 못하고 고착화시키는 늪일 수 도 있습니다. 이 일상의 늪을 빠져나와봐야 주변이 보이고 냄새가 전해지고 감정과 공감이 공유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달 만에 출근하여 아침 글로 그대와 마주합니다. 일상의 루틴에서 빠져나와있다 다시 만나니 반가움이 배가되어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가끔은 무작정 떠나고 무작정 하지 않아 볼 일입니다. 그래야 일상의 소중함을 오늘처럼 다시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대 있음의 소중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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