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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09. 2021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우다

칼 세이건이 말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태어나 세상의 존재속에 포함되어 시간의 흐름을 알았다. 그 시간이 정해져 있음도 눈치챘다. 그래서 그 한정된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고민한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 그래도 그나마 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그 시간을 활용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기에 그렇다. 시간이 지난 그 어느 날 되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그렇다. 이 시간조차 내가 만들어낸 허상의 굴레이지만 거시 세계에 발들여 논 순간,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기에 기꺼이 살아낼 방편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하나씩 해보려고 노력한다. 바로 버킷리스트다(Bucket List). 이 버킷리스트에는 몇 개의 항목이 담기는 것이 바람직할까? 각자 정하기 나름일 것이다. 하나면 어떻고 열개면 또 어떠하랴.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나가기 위해 계획을 하고 실행을 하는 과정을 통해 도전의식과 희열을 느끼고 결국은 이루어내고야 마는 행복감이 중요하다.


버킷리스트를 만들면서 실현 불가능한 것들로 목록을 채우지는 않는다. 평소에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이 주로 항목을 채우게 된다. 여행이 될 수 도 있고 한적한 시골에 작은 집을 지을 수 도 있다. 그림을 그릴 수 도 있고 통기타 밴드를 만들어 연주회를 할 수 도 있다. 이 목록은 계속 덧입혀질 수 도 있고 바뀔 수 도 있을 것이다. 바뀌거나 빠진 들 어떠하랴. 목록에 신경 쓰고 있음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나는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난주에 지웠다. 이루었다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그래도 완성을 했다.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라는 에세이 책을 낸 것이다. 글쓰기야 평생 운명처럼 따라다닌 그림자였지만 그 그림자를 형상화하여 실물로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인해 한 달 쉬고 한 달 일하는 근무패턴이 아직까지 지속되는 와중에 그동안 써온 원고를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데 이 시간은 절묘한 활용으로 채워졌다. 운이라고 하는 놈은 항상 이렇게 운 좋게 다가오기도 하기에 매력적인 듯하다. 

정말로 운이 좋았기에 책의 형상을 만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감히 책으로 엮고자 마음을 먹기 힘들었을 텐데 코로나는 나에게 나쁜 운이 아니고 좋은 운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더구나 운 좋게도 좋은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 책으로 엮일 수 없는 졸필을 잘 엮어주셔서 책의 형태로 만들어 주셨다. 그렇게 좋은 운들이 내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는 것에 감사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으니 그다음 줄에 쓰여있는 항목을 실현할 차례다. 코로나 19로 책을 만드는 행운이 있었던데 반해 매년 가족이 해외여행을 한두 차례 다니던 패턴에 제동이 걸린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 어려서부터 매년 해외여행을 나섰다. 유럽은 10년 동안을 돌아다녔다. 취항노선이 없는 남미와 아프리카를 빼고는 전 세계 대부분을 다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가족 여행지가 있다. 미국 뉴욕과 워싱턴이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남아 있는 가족여행지의 완 성지가 바로 미국 동부다. 물론 그곳을 다녀온 후에도 계속 다른 나라와 지역을 다니겠지만 오랜 가족 해외여행의 종착지는 뉴욕인 것이다.


왜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해외 가족여행의 종착지로 뉴욕을 택하고 있을까? 오랜 시간 가족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할 때는 나름 목표가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높여주고자 하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오랫동안 유럽을 고집했던 것이다. 가면 박물관은 꼭 들러봐야 하는 코스였다. 이런 나름의 노력으로 아이들 눈높이는 올라갔을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남겨둔 목적지가 뉴욕이다. 인류 문명의 끝판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브루클린 뒷골목의 살벌하고 음침한 분위기에서부터 맨해튼의 고층빌딩까지, 꼭 아이들이 보고 느꼈으면 하는 아비의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숨어있는 곳이 뉴욕이다. 벌써 막내 놈이 군대 다녀오고 큰 아이는 직장인으로 사회에 나와있지만 말이다.


올해는 뉴욕으로 가족 여행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아니 2~3년은 미뤄질 듯하다. 그래도 버킷리스트에 아직 지워야 할 줄들이 여럿 있음에 초조해하지 않기로 한다. 반드시 한 줄 한 줄 지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줄씩 지워나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행복인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모두 그대가 옆에 계셔서 따라오는 행운임에 더욱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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