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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7. 2021

동물은 공간을 지배하고 식물은 시간을 지배한다

비 내리는 창문 밖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회색빛 하늘이 비가 되어 내려앉는 현장을 지켜봅니다. 하늘과 땅이 이렇게 연결됩니다. 그 사이에서 짓눌리지 않으려고 우산을 받쳐 든 군상들의 총총걸음을 봅니다. 대단한 힘입니다. 하늘의 무게를 우산으로 지탱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산 옆의 나무들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요. 아직 초록의 잎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이미 식물의 물오름이 끝난다는 처서가 지난 지 2주일째이고 오늘은 벌써 절기상 백로입니다. 백로(白露)는 말 그대로 '흰 이슬'입니다. 이때쯤에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뜻입니다. 이 아침 나뭇잎 위에는 이슬이 아닌 빗방울이 알알이 흘러내립니다.


나무의 물관으로 물이 오르지 않으니 곧 나뭇잎은 진초록의 색을 내려놓을 겁니다. 나무는 계절을 한 계절씩 앞서 갑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미리미리 준비합니다. 바로 식물은 시간을 극복하는 방법을 체득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종자식물은 씨라는 독특한 유전 전달 형태를 만들어 시간을 극복했습니다. 씨앗은 수백년 아니 수천년까지도 씨앗속에 생명을 간직했다 새싹을 내기도 합니다. 깎아도 깎아도 자라는 일 년생 풀조차도 땅속뿌리 근처에 생장점이 있어 추운 한겨울을 지나고도 또 자랄 수 있습니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었기에 공간을 지배하는 대신 시간을 지배했던 것입니다.

반면 동물은 시간 대신 공간을 지배했습니다. 움직임을 택한 것입니다. 동물과 식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움직임에 있습니다. 움직임으로써 신경망이 발달했고 브레인이 등장했습니다. 브레인은 움직임을 조종하는 조종실입니다. 식물은 움직일 필요가 없어 신경조직이 없고 브레인이 없습니다. 척색동물인 바닷속 멍게는 유생일 때 브레인이 있게 태어납니다. 그러다 성체가 되어 암석 표면에 부착하고 움직임이 사라지면 뇌를 먹어치웁니다.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뇌도 필요 없어진 겁니다.


내가 지금 걷고 앉아있는 움직임 현상 하나하나조차, 공간을 지배하고자 움직여온 동물들의 DNA가 면면히 뒤섞이며 흘러내려온 결과였던 것입니다. 


비 내리는 창밖에 묵묵히 서 있는 가로수와 그 사이사이를 지나는 무수한 우산의 행렬을 내려다보면서 이 순간이 얼마나 경이로운 현상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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