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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16. 2021

"세상을 본다"는 것은 '빛을 보는 것'이다

"세상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저 청명한 하늘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눈으로 보이는 사물과 존재를 내가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을 본다"는 상태가 가능하려면 빛이 있어야 가능하다. 빛으로 사물의 관계를 인지하는 것이 본다는 현상이다. 빛이 없다면 본다는 단어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어둠을 본다? 어둠에도 명암이 있기에 본다는 의미를 가져다 붙일 뿐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완벽한 어둠이라면 본다는 의미는 사라진다.


사물의 관계로서의 본다는 현상이 아니고 "심적, 마음을 읽는다"는 표현을 할 때도 '본다'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하지만 이 마음을 본다는 결과는 이미 과거에 눈으로 사물의 관계를 보았던 현상을 조합했을 뿐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말할 뿐이다.


결국 본다는 것은 빛의 연결이다. 사물은 빛 입자가 점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점의 관계에 의해 사물의 형체가 드러난다. 눈에 의해 보이는 순간, 존재가 드러난다. 바로 인간 의식이 개입하는 순간, 존재가 출현함을 눈치챌 수 있다. 세상은 측정하기 전에는, 내 눈에 보이기 전에는, 무엇이든 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순간 어떤 존재로 드러난다. 확률적 결정론의 세계다. 시간과 공간의 관계 속에서 존재가 출현하는 것이다. 세상은 사물의 세계가 아니고 관계의 세계였던 것이다. 

세상의 유일한 실체는 관계뿐이다. 인문학적 관계도 중요하긴 하다.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을 뒤덮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로 인하여 세상 모든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요지경 속 세상도 바로 이 관계에서 시작한다. 세상 자연 자체가 관계로 만들어졌지만 인간의 관계가 자연의 관계를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오로지 감각적 관계만이 득세를 하고 있는 세상이다.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세상을 잘못 보게 만들었다.


세상을 보는 눈을 이제라도 자연으로 되돌려보자. 인간 군상 관계에서 펼쳐지는 치열하고 살벌한 눈치보기에서 벗어나 저 높은 하늘과 색깔을 바꾸는 나무들의 향연을 지켜보자. 자연의 관계 속에 잠겨있는 나를 발견해보자. 인간사에 휩싸여 허덕이는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잠시 자연의 숨결 속에 나의 관계를 연결시켜 보자. 자연과 공진화되어 가는 관계를 느낄 수 있는가?


세상을 보는 눈은 이렇게 자연의 빛을 느끼고 깨닫는 창이다. 포톤 입자 하나하나를 세는 일이다. 그래서 형체를 만들고 존재를 만들고 거기에 나의 생각과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세상을 보는 일은 그렇게 빛 입자 하나하나를 만나는 일이다. 얼마나 따스한가, 저 내리쬐는 태양 빛 입자 하나하나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일이다. 세상은 저 빛을 인지하는 순간만큼 밝고 경이롭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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