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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06. 2021

터부와 징크스에 자유를 許하라?

우리나라도 터부(taboo)가 많은 사회다. 터부는 금기(禁忌)다. 사회적인 관습이나 미신적인 관념에 의해 특정 행위를 엄격히 금하는 것이다. 미신적 금기로는 민간신앙에 의해 신성하거나 더러운 것에 접촉하지 않게 하는 금기가 있고 개인이나 사회에게 해를 끼친다는 인식하에 터부시 되는 것도 있다.


우리는 이사를 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조상의 묘를 이장할 때도 '손 없는 날'을 잡는다. 아니 중요하고 큰 일에만 그런 것도 아니다. 건물에 4층이나 13층이 없는 건물도 허다하다. 심지어 계단을 내려갈 때 오른발을 먼저 딛느냐 왼발을 먼저 딛느냐를 정하기도 하고 스포츠 선수들은 다들 경기를 하기 전에 특정 색깔의 속옷을 입는다던지, 면도를 하지 않는다는 등 한두 가지의 터부는 가지고 있다.


한편 부적(符籍)도 종이에 글씨, 그림, 기호 등에 그린 것으로 액막이나 악귀, 잡신을 쫒거나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주술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데 터부를 깰 수 있는 비장을 카드처럼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참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우주여행시대를 개막한 21세기에 비과학적 주술과 같은 터부와 부적이라니, 웃음이 나지만 우리 사회에 이렇게 깊숙이 들어와 있는 비과학적 행위가 통용되고 있고, 믿고 있다는 것은 노벨 과학상에 단 1명의 후보도 올리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듯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더구나 나라를 이끌겠다고 하는 사람이 손바닥에 임금 왕 자를 쓴 것에 대하여 회자되고 있다. 그저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낯간지러운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된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하고 사례를 만들고 범주화를 해서 개념을 만든다. 그렇게 터부는 우리의 일상에 관습이 되고 습관이 되어 작동한다. 사회와 문화를 지배한다. 무서운 현상이다.

이 터부와 징크스는 수렵생활을 하던 선조들이 만들어온 습관이다. 사냥은 인간이 하는 가장 확률 낮은 게임이다. 지금이야 총으로 한방이면 호랑이도 잡고 사자도 잡을 수 있지만 돌과 돌화살촉으로 된 무기를 들고 대형 포유류를 잡는다는 것은 성공률 10%도 안 되는 위험한 일이다. 활을 쏘아 급소에 맞지 않으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가서 잡아야 한다. 에너지 소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쩌겠는가? 한번 타깃을 정하고 활을 쏠 때 정신일도 하사불성 하여 급소를 맞추어 즉사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펄떡펄떡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벌벌 떨리는 손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래야 활시위를 급소를 향해 정확히 당길 수 있다. 


바로 교감신경을 진정시키는 부교감신경을 유도하는 일,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리듬을 찾아 적절하게 리듬을 맞추어야 가능하다. 이 리듬을 맞추는데 터부와 징크스는 절대적 역할을 한다. 사냥을 나가서 성공을 하기 위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단으로 터부는 조상들로부터 학습되어온 관습으로 작동하고 현실에서도 동작하게 된 것이다. 


터부와 징크스를 억제할 수 있는 절대적 계시가 의례(ritual)다. 정교한 절차에 의해 충동력을 제어하는 시스템으로 종교가 작동한다. 인간의 행동을 문명화시키고 정교한 습관으로 제어한다. 엄숙한 종교 의례가 생활에 들어와 습관화되면 무서운 힘을 갖는다. 인류가 2천 년 넘게 속을 수밖에 없었던 원천이다. 


하지만 삶을 사는 지혜로써 종교가 혁혁한 공헌을 하듯이, 터부와 징크스도 개인의 의지를 다잡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면 그것으로 자유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모든 전제조건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단서가 중요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가능한 모든 것에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내버려도라는 것이다. 연필로 쓰던 칼로 새기던 말이다. 그건 그 사람의 자유임을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하든 말든.


내버려 두면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그건 그 사람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다.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내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내 역량이 아직 미진하고 불충분하다는 뜻이다. 나를 가다듬는 시간을 늘리라는 신호다. 허황되고 엉뚱한데 정신 팔지 말라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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