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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5. 2021

코로 숨을 잘 쉬어야 옆사람이 도망가지 않는다.

나도 자면서 코를 곤다고 한다. '곤다라고 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나는 내가 코를 골고 자는지조차 모르는데  남들이 '내가 코를 골고 잔다'는 것이다. 심하긴 한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끔 옆에 자던 와이프가 없어진다. 내가 코를 너무 골아서 거실로 나가서 자는 것이다. 요즘은 와이프가 귀마개와 안대를 하고 잠을 잔다.  미안한 마음이 엄습한다. "코를 고니 코에 빨래집게라도 집고 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내가 코 곤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가 있긴 하다. 가끔 휴일 소파에서 카우치맨을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이 그렇지만 소파에 옆으로 누워 TV를 보다가 잠이 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잠깐 선잠을 잘 때 내 코 고는 소리에 놀라 후다닥 깰 때가 있다. 그때 내가 코를 골았구나 눈치채게 된다. 뭐 요즘은 휴대폰 녹음 기능으로 코 고는 소리를 녹취해 들을 수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한다. 옆에서 잠을 자야 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소음이었겠나? 방을 나가고 귀마개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코를 고니 코에 문제가 있는 걸까? 코골이 원인에 대한 병리학적, 신체적 사유야 너무나 잘 알려져 있으니 논외로 치자. 다만 호흡의 측면에서 잠깐 들여다보자.


코를 골 때 대부분 입을 벌리고 잔다. 입을 벌리고 입으로도 공기를 흡입하는 것이다. 공기가 코와 입의 두 공간으로 들어가 목 뒤의 목젖이나 인두, 입천장을 지나며 베르누이의 법칙에 의한 공기 흐름의 차이로 인하여 진동을 가져온다. (코 고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베르누이의 법칙까지 동원하면 너무 나갔나? 물론 나이가 들어 연구개가 늘어지고 하여 원활한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신체적 변화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코 고는 소리가 들숨 때 나는 이유다. 날숨 때는 그저 푸후~하고 내뱉기고 만다. 허파에서 기도를 지나 나오는 통로가 하나이기에 공기의 파장을 떨리게 할 장애물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입을 통해 날숨을 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를 안 골기 위해서는 간단하다. 입을 닫고 코로 숨 쉬면 된다.

그런데 잠을 자는 서파수면 상태나 REM 수면 상태에서는 내가 입을 벌리고 자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입을 닫아야 한다. 들숨의 공기 흐름을 코를 통한 통로로 단일화를 시켜놓으면 목젖 부근의 떨림이 있을 수 없다. 요즘은 입을 닫게 하는 테이프도 있다. 자기 전에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자는 것이다. "자다가 숨이 막혀 죽으면 어떡하지"라고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와이프 성화에 한번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자봤다. 정말 코를 안 골았다고 한다. 그런데 테이프를 붙이고 자는 나는 불편하고 꺼림칙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인가?"라고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크게 코 고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이명비한(耳鳴鼻鼾)이라는 말이 있다. 이명은 자기는 듣고 남이 못 듣는다는 것이고, 코 골기는 남은 듣지만 자기는 못 듣는다는 뜻이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한쪽은 알고 한쪽은 듣지도 못한다. 나한테 있는 것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섭섭하고,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고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바로 상대가 있다는 관계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문구다. 항상 나에게 문제가 없는지 되돌아 살펴야 한다.


채근담에 대인춘풍 대기추상(待人春風 待己秋霜 ; 타인을 대할 때는 봄바람같이 온화하게 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하게 하라)이라고 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너그러워지고 편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나이 예순 살을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나이 60세가 되면 귀가 순해져 듣는 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나이 60세가 되기전이라도 이 경지에 다달아야 한다. 남들이 나를 보고 코를 곤다고 하면 감정 상하지 않고 그런 줄 알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숨 쉬는 호흡조차 들여다보고 다스려야 할 일이다. 그래야 입을 닫고 코로만 숨을 쉬어 코골이조차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와이프를 거실로 내쫓는 그런 무례를 범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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