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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4. 2021

가을이 내려온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정취는 사계절 모두 운치가 있긴 하지만 만추의 계절을 최고로 친다. 이 길을 걸어 30년 넘게 출퇴근해 본 내 눈에는 그렇다. 정취는 감정을 불러오고 감정은 풍경 속에 이입되어 다른 계절의 모습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연초록의 새순들이 돋아나 덕수궁 담장을 넘어오는 봄의 정취 또한 장관이고 짙은 녹음의 그림자에 돌담의 돌들이 제각각의 그림자를 드리울 때 들려오는 매미 울음이 맑은 땀방울을 멈추게 하는 여름은 말해 무엇하랴. 그리고 온갖 색으로 치장을 한 가을의 채색은 덕수궁 돌담길의 백미가 아닐 수 없으며 하얀 눈 내려 고즈넉이 잠긴 궁궐의 아침은 또 얼마나 고요하고 장엄한 겨울의 모습인지, 돌담길 구비구비 조성한 찻길의 검은 곡선이 흰 백지에 한줄기 붓질을 한듯하다. 30년 넘게 사계절의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본 사람이 보는 풍광의 정취다. 적극 추천한다. 저 노란 잎 다 대지로 내려오기 전에 이번 주말이라도 한번 다녀가시라.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느끼는 만추의 풍광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요즘 덕수궁 대한문이 울타리로 가려져 있어 아쉬움이 있다. 대한문 앞 월대 복원공사를 하느라 그렇다. 그 옆에 덕수궁 전망대가 있는 시청 별관 건물 한 동도 리모델링 중이라 가림막에 가려져 있어 만추의 정동길 풍광에 옥에 티다. 그렇다고 이 옥에 티들이 돌담길 정취까지 모두 가리지는 못한다.

덕수궁 돌담길의 만추는 2구간으로 즐길 수 있다. 첫 구간은 대한문에서 정동교회 앞까지이고 두 번째 구간은 정동극장에서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을 지나 경향신문 앞까지 가는 구간이다. 두 구간에 심어진 가로수의 수종이 다른 관계로 만추의 컬러가 다르기 때문이다. 첫 구간은 느티나무 등의 수종이라 단풍색이 갈색의 기운이 강한 반면 정동극장에서 경향신문으로 올라가는 정동길 구간은 온통 은행나무 가로수라 노란색의 향연이다.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져 풍기는 악취 염려는 안 해도 된다. 서울시에서 일찍이 열매 수거 작업을 해놔서 예쁜 풍광만 눈으로 담아갈 수 있다.


 정동교회에서 미대사관저를 지나 구세군교회로 가는 구간도 있는데 덕수궁 담장 안쪽의 은행나무들이 담장 너머까지 드리워져 있긴 하지만 앞의 두 구간에 비해서는 운치가 조금 덜하다. 이쪽 구간은 노을이 진 저녁에 걸어라. 담장에 비친 조경의 은은함이 또한 일품이다. 이 구간도  사실 담 너머에 대한제국 마지막 왕인 순종이 즉위한 건물인 돈덕전을 복원하는 작업 중인 현장이 있긴 하지만 만추의 정취를 빼앗아가지는 못한다.


덕수궁 돌담길의 가을 정취는 다음 주까지가 최절정이지 싶다. 한번 나오시라. 덕수궁 궁궐 해설 및 정동길 역사 해설을 해드릴 정도는 된다. 30년을 다닌 길이라 내가 외람되게 유홍준 선생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편에 잘못 실린 사진까지 지적질해서 사진설명까지 고친 사람이다. 덕수궁과 정동길 주변에 스며있는 구한말 역사를 엮어서 찰지게 전해드릴 정도는 된다. 물론 정식 해설사는 아니다. 야매로 혼자 독학한 실력이니 너무 믿지는 마시라. 하지만 알고 나면 더욱 만추의 정취가 눈에 들어오고 채색의 색깔도 더욱 고와지는 법이니 그 운치를 더해드릴 정도는 된다. 돌담길과 정동길을 역사해설과 함께 걸어 올라가 경향신문 앞에 있는 LP판 틀어주는 바에 들러 맥주 한잔 마시며 이문세의 '광화문연가'를 신청해 들어볼 일이다. 만추의 계절은 그렇게 스며들어 과거의 저편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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