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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6. 2022

말에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

"동물은 감각의 지배를 받고 인간은 언어의 지배를 받으며 우주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합니다. 그중 인간의 언어는 사람들의 생각을 만들고 개념을 만들어 자연에 없는 추상과 상상까지 끌어옵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확장을 언어를 통해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어에는 마술 같은 품격이 숨어 있습니다. 말과 언어는 소리를 매개로 하여 청각기관을 사용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글도 사실은 시각의 소리일 뿐입니다. 읽지 않고 눈으로만 봐서는 글의 뜻을 알아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 글을 읽고 있습니다. 입으로 소리 내어 읽지 않을 뿐 머릿속으로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자는 소리를 2차원 평면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 문자가 기능을 하려면 반드시 우리 머릿속에서 소리로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말을 한다는 행위는 이렇게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고차원의 예술입니다.


그래서 말을 하는데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말과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그저 타고난 천부적 기능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듣게 되는 어머니의 말을 통해 학습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습니다. 자라면서의 환경이 그 사람의 언어의 품격을 형성합니다.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언어가 다듬어지고 지성이 보태져 그 사람의 인격의 아우라가 됩니다. 사람을 만나 몇 마디 말을 나누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대강 눈치챌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아우라는 고상한 척 말을 하여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감추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이라는 행위를 통해 본인의 지식과 지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그대로 반영되어 표출될 뿐입니다. 차리리 고상한 척 잘난척하기에 제일 좋은 것은 아무 말하지 않고 옅은 미소만 머금은 채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면 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순간 수준이 드러나는데 이를 감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말을 통해 나의 내면과 생각을 드러내 소통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소통의 수단인 언어를 통해서 상호 생각을 교류해야만 관계가 형성되고 사회가 굴러가고 일상이 유지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아무 말 대잔치를 해서는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말과 언어는 관계를 만드는 도구이기에 이 말과 언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고 버무리느냐가 관계를 좋게 하느냐의 관건이 됩니다. 말과 언어를 품위 있게 잘 구사하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양아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말과 언어에는 반드시 품격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과 언어는 때와 장소에 따라 구사하는 방법이 달라야 하고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야 합니다. 친한 정도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정말 친한 친구사이에서는 웬만한 욕을 섞어 써도 그것이 욕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의 대화 속에 천박한 용어를 섞어 쓸 수는 없습니다. 친하다는 정도의 개인적 차이로 인하여 서로 얼굴 붉히는 경우를 종종 보는 이유입니다.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고 말을 스스럼없이 했는데 상대방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 말을 막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감정이 상합니다. 이런 상황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게 됩니다.


정권이 바뀌고 등장한 시위문화의 단면이 낫낫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뭐 오늘내일 일도 아니긴 하지만 쌍욕과 비속어가 난무하여 사람의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립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욕들을 보면 모두 된소리와 날카로운 소리들의 집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로 ㅆ ㅉ ㅃ ㄴ ㄷ ㅍ 등의 자음들이 사용됩니다. 날카롭습니다. 귀로 들으면 팍팍 찌릅니다. 욕이 두리뭉실한 ㅇ이나 ㅎ 등으로 만들어진 단어는 전혀 없습니다. 이런 단어는 감정을 격앙시키지 않기 때문에 욕으로 쓰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자극해야 하는데 '사랑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격앙의 사회, 자극의 사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말의 품격이 떨어지고 상스러운 언어가 득세하는 현장을 너무도 자주 보게 됩니다. 비난과 조롱의 말들만 난무합니다. 은유가 은유가 아닌 웃음거리로 전락시킵니다. 우리 사회의 단면입니다.


말의 품격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영어 단어 몇 마디 섞어 쓰는 것을 품격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행위를 하는데 어떻게 절제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임을 만천하에 알리는데 어찌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욱 조심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혹시 나는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가려하는지 되돌아봅니다. 나 스스로 말의 품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터진 입이라고 말을 막 하지는 않았는지,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해서 말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는지 반추해 봅니다.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많이 들으라고 함이고 입이 한 개인 이유는 적게 말하라는 것이다"라는 우화를 되새겨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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