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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7. 2022

지금은 ISFJ일 뿐이다

2000년대 초반 한때 혈액형별 성격유형으로 사람들을 범주화시키고 동질화시키려는 유사 심리설이 유행하더니 근래 들어서는 형태가 바뀌어 사람 심리를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와 사람의 성격을 9가지로 분류하는 성격 유형 지표인 에니어그램(Enneagram)이 유행이다. MBTI도 그렇고 에니어그램도 그렇고 얼마나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전문 연구소까지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온갖 도구와 심리지표를 만들어 사람들을 구분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성격 지표들이 제시하는 결과물들이 맞고 틀리고, 옳고 그름은 따지지 말자. 그렇다고 믿으면 맞는 것이고, 아니라고 판단하면 아닌 것이다. 심리테스트는 믿음의 확신에 관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던 시절, 어색한 대화를 풀어가는 실마리로 많이 활용되었다. 사람을 소개하는 미팅 장소에 가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였다. "O형입니다" "어머! 어머! 저도 O형인데, 어쩐지 성격이 비슷하다 했어요?" 등등으로 말이다. 상대방과 서로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 말의 물꼬를 트는 데는 적격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만났을 때 이 혈액형을 물어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맞고 지금은 안 맞는 것인가? 좀 더 세분화된 성격유형 테스트 지표가 있어서 혈액형별 유형은 소용없어진 걸까?


아닐 것이다. 70억 명이 넘은 인간들의 군상을 혈액형에 따라 4가지로 성격을 범주화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임을 눈치챈 것이다. 그저 재미거리로 "그래 비슷한 거 같네"정도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함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폐기되어버린 성격유형 분류법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더니 MBTI라는, 인간의 심리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누는 지표가 등장하여 사람들을 사로잡아 버렸고 특히니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기업에서 채용 도구로까지 쓴다는 소문이 나면서부터 기업별로 맞는 MBTI 족보까지 등장했단다. MZ 세대와 대화를 하려면 반드시 MBTI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너무 어이없지 않은가? MBTI 성격 유형 검사항목을 테스트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재검사를 할 때마다 결과 유형이 다르게 나온다. 검사항목에 체크를 할 당시의 여러 심리 상태와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면 검사의 유효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열광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로 '나에 대한 정의'를 내가 쉽게 내릴 수 없는데 성격유형 테스트를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를 알고 싶어 하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16가지로 나뉜 한 유형에 나를 고정시켜 놓으면 그 순간 거기에 들어가 있는 모든 항목은 나의 성격으로 규정되어 확신으로 변해 버린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관찰자의 순간이 적용된다. 측정하는 순간 파동이 입자로 결정되듯이 MBTI의 한 유형에 들어가는 순간, 그 성격은 모두 나에게 해당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나의 성격에 대한 명찰을 달게 되면 타인들의 명찰도 확인하고 싶어 지는 게 인간 심리다. '너는 어떤데?'를 반드시 묻게 된다. 심리학과 온갖 운명을 점치는 모든 도구와 행위들이 파고드는 인간의 심리 부분이다. 그렇게 해서 주변 사람들을 범주화해놓는다. 나하고 성격이 맞는 사람, 아닌 사람, 나에게 피해를 줄 수 도 있어 피해야 하는 사람, 가까이해야 하는 사람 등으로 규정을 짓는다. 이럴 때 편하게 사람의 부류를 재단하는 가위로 MBTI를 활용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다고 규정지어 놓으면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된다. 착각이 현실로 둔갑하지만 그것이 사는데 아주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래서 비과학적이고 허무맹랑한 일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MBTI가 정확하려면 인간의 수만큼의 유형이 있어야 하는 게 맞다. 즉 인간마다 모두 다른 유형이라는 것이고 그만큼 복잡 미묘하다는 것이다. 이렇다고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 범주를 나누는 것은 그렇게 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일 뿐 그렇게 구분 지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구분 짓고 범주화하고 싶어 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미래와 타인과 나를 알게 되고 엿볼 수 있으면 심리적 위안을 삼을 수 도 있고 남들보다 앞서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일 뿐이다.


범주화된 성격을 너무 믿지 말자. 사람은 키메라처럼 여러 형상을 내재하고 있다.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닥치면 성격을 바꿔서라도 상황을 해결하게 되고 감추어진 다른 성향이 작동하게 된다. 내 안에는 모든 MBTI가 다 들어 있다. 지금 이 시간에 보여지는 MBTI는 ISFJ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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