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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22. 2022

제주의 Serendipity 한 갤러리

세상 살면서 가끔은 불현듯 눈이 번쩍 뜨이고 온 마음이 콩닥콩닥하게 하는 대상을 만날 때가 있다. 바로 Serendipity 한 만남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만나게 되는 행운이다.


이 아주 우연한 뜻밖의 발견을 지난 주말 제주에서 했다. 올해에만 벌써 세 번째 제주를 갔고 아마 평생 30여 차례도 넘게 내려갔을 것 같다. 물론 골프를 치느라 내려갔다 골프장만 들렀다 오면서 제주시내 맛집 하나 정도 들러 식사를 하고 오는 경우도 흔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시작하던 2년 전에는 보름 살기를 하기도 했다. 인생의 여행지에서 그렇게 제주는 자주 가게 되는 곳이라 골방쥐가 뒤주 드나들듯 했고 별 감흥 없이 의례적으로 한 번씩 다니러 내려가는 그런 곳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에 내려갔던 적도 예닐곱 번은 되었으니 많이도 내려가지 않았나 싶다. 지난 주말도 가족여행으로 3박 4일을 내려갔다. 큰 아이가 대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는 모든 일정 준비와 예약을 도맡아서 하는 관계로 나는 그저 운전기사 역할과 돈 내는 경리 역할을 하고 맛집에 가서 '정말 맛있다'라고 감탄을 연발해주고 풍경이 좋은 곳에서는 '정말 멋지다'라고 맞장구를 쳐주는 부스터 역할을 하면 된다.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그저 가자는 데로 운전해주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이제는 내가 가족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데리고 다니는 형국으로 바뀐 것이다.


지난 주말 제주여행에서 그렇게 아이들이 가자는 데로 따라다니다, 들른 곳이 함덕해수욕장 오른편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는 전이수 갤러리 '걸어가는 늑대들'이었다. 큰 아이가 그림에 관심이 많기도 하여 제주에 있는 웬만한 미술관이나 개인 갤러리들은 그래도 대부분 다 가봤다고 했는데 이 전이수 갤러리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서너 차례 함덕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하기도 했고 델문도 카페의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볼 때도 있었는데 해수욕장 끝에 갤러리가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전이수 갤러리

그렇게 갤러리를 들어서는 순간, 갤러리의 주인공이 2008년생으로 올해 14세의 아이임을 알았고 꽤 오래전 어느 방송국 '영재 발굴단'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언뜻 났다. 방송은 본 지가 오래되어 그림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갤러리 입구에 쓰여 있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언젠가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바람은 말했다. 잠깐 쉬어가라고!!" 글을 읽을 때만 해도 감히 이 갤러리가 14살 소년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갤러리에 입장을 하면 올해 전시 주제인 '괜찮아'에 대한 작가의 소개 동영상을 먼저 보게 하여 전시 의중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게 했다. 작품을 읽게 하는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다. 꼭 도슨트가 없어도 그림 작품 하나하나마다 글들이 옆에 쓰여 있어 관객들의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림과 글이 있는 동화책을 읽는 형상이다.

전이수 갤러리 전시 '소중한 사람'

그림도 그림이지만 글들의 표현력 또한 범상치 않다. 천재의 감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감히 드러나지 않는 그런 감흥이다. 그림의 색감도 그렇고 글 속에 따뜻함이 묻어난다. 감히 천재임이 틀림없다. 이 재능이 어른들의 사시로 인해 왜곡되지 않기를, 이 순수함이 그대로 전달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를 바라본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이 계속 그림과 글로 표현될 수 있도록 어른들은 그저 지켜만 봐주기를 바라본다. 어론들의 건방짐이 작가의 세계에 개입되지 않기를, 그래서 오롯이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이 따뜻해지기를 기원해 본다.


제주에 가시면 꼭 '걸아가는 늑대들' 전이수 갤러리를 예약하고 한번 들러보시라. 그림과 글을 보고 가슴 울컥하다면 그대는 정말 따뜻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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