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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5. 2022

시선의 방향

인류의 시선을 무한과 연속과 인과로 고정시켰던 개념이 양자역학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무한은 유한으로, 연속은 불연속으로, 인과는 관계로 바뀌었다. 양자 혁명이 반도체 안에서 소통하는 컴퓨터 용어인 줄만 알면 큰 오산이다. 인류의 시선 방향을 180도 바꾸어 놓은 혁명이다.


자연과학의 시선이 인문학으로 스며들면서 역시 인간의 시선을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인류가 이루어놓은 모든 문명과 철학과 구조물은 모두 인간 브레인이 만들어낸 상상의 결과물일 뿐이다. 인류는 이제야 겨우 브레인의 작동원리를 들여다보고 인공지능에 적용해보며 2,000년 넘게 인간의 관념을 지배해온 것이 무엇인지의 본질도 알게 됐다. 우주에서 인간만이 행하는 아주 특이한 행위이지만 인간 사회에서만 유효한 국지적 시선이었음을 깨닫고 말았다. 인류의 시선이 바뀐 것이다. 안 바꾸려고 부단히 저항하는 부류들이 있지만 말이다.


인류의 시선은 자연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다. 자연은 우주를 움직이는 힘의 스냅사진이다. 관찰자가 보는 순간순간들이 모인 것을 자연이라 표현할 뿐이다. 자연은 시공의 관계가 중력으로 만들어낸 현상이다. 그래서 위와 아래의 관계가 등장하고 앞과 뒤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힘의 방향이다. 하지만 또 다른 시선의 방향으로 알고 있는 좌와 우는 자연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연에서 좌와 우는 이미 대칭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구분할 필요가 없다. 자연에는 없는, 아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좌와 우가 인간사회에 들어오면 갈등과 싸움으로 번지는 문화적 현상으로 등장한다. 자연에 없는 행위가 벌어지니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삐그덕 거릴 수밖에 없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대칭이다. 비대칭은 불완전하여 움직임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진화의 과정 속에 도태되어 버린다. 일어날 것이 일어나고 최적의 상태만이 남게 된다.


인간의 시선은 모두 제각각 일 수밖에 없다. 이는 현재, 이 순간, 이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다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현재는 무수히 많은,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 나의 현재와 미국 LA에 있는 사람의 현재가 있지만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또한 시간을 태양계로 넓히면 지금 보고 있는 태양빛은 8분 20초 전에 태양을 출발한 것이 지금 내 눈의 망막에 도달한 것이다. 지금 당장 태양이 사라져도 8분이 지나서야 세상이 깜깜해진다. 어디 이뿐이랴. 지구는 시속 1,670km로 자전(이 조차도 위도에 따라 각기 다르다)을 하며 10만 7,000km의 속력으로 태양을 공전을 하고 있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무려 초속 220km 속력으로 은하 중심을 공전하고 있다. 인간은 그저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바깥 풍경이 변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편안해할 뿐이다.


1990년 2월,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는 끝 지점에서 카메라를 지구로 돌려 지구의 모습을 찍었다. 칼 세이건이 당시 보이저 계획의 화상 팀을 맡았는데 세이건의 주도로 촬영된 유명한 사진이다.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다. 사진에서 지구 크기는 0.12 화소에 지나지 않았다. 지구와의 거리 61억 km였다.

태양계 끝에서 보이저1호가 찍은 지구의 모습

시선의 차이와 방향은 이런 것이다. 칼 세이건은 당시 이 사진에 대한 소감으로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중략)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여다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점에 지나지 않는 사진을 바라보면 가슴 먹먹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시선의 방향을 바꾸면 시간이 무엇이지, 공간이 무엇인지, 물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살아 숨 쉬고 있고, 보이는 저 녹색의 향연과 눈부신 햇살의 장관과 쏟아지는 빗줄기의 충만함도 알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내 옆에 지금 누가 있는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대 계셔서 감사합니다.




ㅇ '창백한 푸른 점' - 칼 세이건 / https://www.youtube.com/watch?v=8YfolfC4K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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