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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4. 2022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실제로 발행한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사실(事實)이라고 한다.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되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말한다. 우리는 사실이 곧 진실일 거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고 들리는 현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이는 사실임이 분명하다. 내가 지금 보고 체험하고 있으니 이는 곧 진실일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이 진실은 아니다.


사실은 감각의 영역이고 진실은 감정의 영역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사실이라면 그 사실에 감정을 실어 옳고 그름의 형상을 입히는 현상이 진실을 결정한다. 사실이 감정에 따라 진실이 될 수 도 있고 안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개념을 혼동하면 의미가 달라지고 의미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해석을 내고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진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한가운데에 종군기자가 있다. 우크라이나 종군기자의 눈에는 처절히 싸우는 병사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옆에서 죽어가는 사병의 얼굴과 포탄에 맞아 찢긴 팔다리를 보며 전율하듯 기사를 쓴다. 아군의 영웅담 하나라도 더 챙겨 쓰고 싶고 러시아의 무자비한 포격의 피해 현장과 폐허 속에서 울부짖는 난민들의 모습을 전하며 적군의 악랄함을 부각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종군기자의 눈에는 모든 보이는 현장이 사실이며 진실이다.


그런데 반대편 러시아 측 부대에 배치된 러시아 종군기자의 눈에는 우크라이나 저격수에게 피살된 자국 군인의 사체가 보이고 드론 공격으로 산산이 부서진 탱크의 잔해가 보인다. 우크라이나 부대 게릴라 전술의 비열함도 보인다. 어떡하든 러시아군의 활약상을 기사로 써서 군인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의무감이 생긴다. 시가전이 펼치지는 현장에 뛰어들어 전진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사진으로 담는다. 러시아 종군기자의 눈에도 보이는 모든 현상이 사실이며 진실일터다.


죽고 사는 전쟁터의 사실은 하나인데 진실은 두 개다.


어떤 진실이 맞고 어떤 진실이 틀린 것일까? 아니다 두 개 다 진실이다. 각자의 종군기자 눈에는 그렇다.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의 탈출을 다룬 2021년 영화 모가디슈에서도 AK소총을 북한 측이 반군들에게 팔았다고 현지 언론에 공작을 한 것을 두고 남측 대사가 '진실이 두 개인 경우가 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진실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과 진실이 뒤섞여버리면 본질이라는 사실이 희석되고 감춰져 버린다. 진실이라는 허상에 물타기가 되어버리면 사실은 표표히 가려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실이라는 허울을 쓰고 기억도 두 개가 된다. 진영이 나뉘고 다툼의 근원으로 자리하게 된다.


믿음과 가치관에 따라 진실이 달라진다면 그것이 과연 진실일까? "사실을 놓고 두 개의 진실로 본다"는 3자 적 관점조차 허무해진다. 사실의 늪에 들어가 있으면, 어떻게든 하나의 진실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진실의 딜레마다. 다른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음을 그 늪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볼 수 조차 없다. 진실이 두 개 임을 눈치채는 순간, 사실은 사라진다.


사실에 감정을 싣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려면 신독(愼獨 ;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감)의 행실로 깨어있어야 한다. 주변의 감언이설을 끌어들이지 않는 객관적 관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사실을 주시해도 감정의 주파수가 한쪽의 진실로 스멀스멀 넘어갈 것이다. 자기를 다스리지 않으면 사실이 진실의 가면을 쓰고 자기주장만 하게 된다. 두 개의 진실이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세상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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